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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프리카(탄자니아, 케냐)/기독교(교회)

킬리만자로 산자락의 오지교회들

by Visionary 2012. 7. 27.

킬리만자로 산자락 이야기(201204) - 교회(1)


  지난 주일(7.8)과 어제(7.15)은 연속으로 킬리만자로 산 중턱에 있는 현지인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나름대로의 문화 충격이 있었다. 첫 번째 방문교회는 담임목사가 제대로 신학교육을 받은 50대 초반쯤의 사람이다. 이 사람은 케냐에도 신학 공부를 위해 3년 유학한 사람이다. 소속교단은 은사주의 교단이지만(최근 교단의 부당한 정치적 압력과 교회 탈취시도 때문 교단에서 탈퇴함) 그런대로 균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교단과 관계 없이 내가 속한 선교단체(Living Water Foundation - 이하 줄여서 LWF, 생수 선교회로 약칭)에서 설립한 교회들이다. 

 

  내가 방문한 주일에 공교롭게 담임목사가 화상을 입어 설교를 못하고 장차 목회자가 되길 원하는 전문대 출신 청년에게 설교를 맡겼다. 아직 신학공부는 한 적 없지만 개인적으로 준비하면서 성경을 열심히 보고 있다고 한다. 이들 예배순서의 가장 큰 특징은 찬양과 기도가 대부분의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다. 이건 장점에 해당되는 데 단점으로 말씀이 빈약한 것은 단점에 해당된다. 암튼 그 쳥년이 설교를 하는데 너무 큰 열정과 평소에 꿈꾸었지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전교인 대상의 설교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감정 때문인지 몰라도 담임목사가 40분 설교하는데 이 청년은 그날따라 오후 1시 30분까지도 설교끝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들 예배의 시작은 오전 10시이다. 찬양이 약 11시 정도 끝나니까 대충 설교시간을 계산해 보시라! 담임목사 조차 중간에 우리보고 그냥 가셔도 된다고 권했으니. 게다가 이들은 전교인 점심식사가 없다. 가난하니까 너무 당연히.

 

  하기야 그 심정 이해가 된다. 나도 교육전도사 시절 담임목사님이 설교 맡겨주면 흥분해서 덤비고 길게 하고 난리 블르스를 친 적이 있었으니까. 그래도 '정도껏'이지. 첫 예배 출석이라 가능하면 전 교인과 예배후 인사라도 제대로 하고자 하는 일념으로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을 듣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결국 1시 30분이 넘어서면서 우리는 예배가 적어도 2시 30분쯤 끝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을 갖고 눈물을 머금고 예배에서 일찍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어제 두번째 현지교회 예배를 위해 또 다른 킬리만자로 산자락의 교회를 찾아갔다. 이곳은 지난 주일의 교회보다 더 깊고 외딴 곳에 있는 교회였다. 그야말로 오지였다. 동행한 전문인 선교사님의 헌금으로 건축된 예배당이다. 그러나 성도가 적어 전교인수가 약 20~30명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도 여기에서는 대단한 규모이다. 하긴 영혼의 중요성을 숫자로 따지는 발상 자체가 자본주의의 가치이지만. 그런데 예배당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들리는 진정한 아프리카인의 천재적 음악성에 감탄했다. 지구촌 전 대륙에서 이들보다 더 음악성과 율동, 리듬 감각이 뛰어난 사람들이 결코 없다고 단언한다. 구체적으로 말해보면

 

1. 꼭 누군가(주로 제일 노래 잘하는 자매) 선창을 한다. 

2. 회중이 따라서 부른다. 그리고 회중 찬양은 어딜 가나 단조롭지만 절묘한 화음이 빛나는 2부로 불려진다.

3. 이들은 소리만 내지 않는다. 온 몸이 찬양의 도구가 되어 춤을 춘다. 팔이나 손만 또는 허리만 움직이는 수준을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온 몸이 각기 따로 따로 독특하게 움직인다. 우리는 흉내내는 것도 불가능하다. 

4. 중간에 타잔 소리 같은 떨림소리를 크게 지르면서 분위기를 돋군다. 


이들은 결코 음악교육이나 발성에 대해 배운 적이 없다. 그야말로 타고난 사람들이다. 노인부터 어린아이에 이르기까지 그렇다. 이 교회도 불과 20여명이 출석했는데 교회당 멀리서부터 들리는 그 화음과 음량의 크기는 듣는 사람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이날 예배는 지난 주일과는 달리 담임목회자가 매우 젊은 사람이고 설교도 상당히 준수하게 일찍 끝났다. 주목할 점은 대부분의 아프리카 교회에서 설교후에 통성기도와 여러 제목으로 사람들을 초청하여 앞으로 불러낸 다음에 합심기도하는 장면은 인상적이며 한국보다 더 뜨겁게 보인다. 헌금은 앞으로 전 교인이 나와서 직접 헌금함에 넣는다. 현금대신 현물도 나온다. 현물은 필요에 의해 다른 성도가 사고 그 돈이 재정에 입금되거나 밖에 파는 경우도 있다. 예배 중에 찬양대 특송이 있었는데 3명의 자매들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찬양대? 그 화음은 어디에도 뒤지지 않았지만!

 

  또 한 가지 귀한 점은 이 교회뿐 아니라 모든 교회에서 이토록 가난하고 초라하게 살지만 적어도 주일에는 최대의 화려한 치장과 옷차림으로 참석한다는 것이다. 머리에 쓴 스카프에서부터 발끝까지 그렇다. 이건 하나님에 대한 예의와 예배에 대한 정성을 담았다는 점에서 점차 간편하고 편리함에 길들여지고 과거의 방식을 구태의연하게 생각해서 너무 자유분방한 한국교회 성도들이 충분히 본받을 만한 점이라고 생각했다. 예배를 위해 성장한 자매들이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졌다. 

 

  예배 후에 아주 쬐그만 사무실 겸 목양실로 초청하더니 소다(우리로 말하면 탄산이 들어간 음료로 아프리카에서 소다는 선망의 음료이고 가난한 나라에서 이걸 한 병 마시는 것은 큰 특권임)를 대접했다. 콜라와 환타가 있었는데 환타 한 병을 함께 간 선교사님과 나누어 마셨다. 이 가난한 나라의 오지 촌교회에서 탄산음료를 대접받다니-----

 

  참 이날 당혹스러웠던 것은 첫 방문인 내게 설교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죽음이다. 스와힐리어 초보자로 이제 겨우 철자와 문법을 배운 사람인데 왠 설교? 나도 못하지만 동행한 선교사님도 아직 통역 수준은 아니다. 완곡하게 거절 의사를 밝히고 다음에 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함으로 해프닝이 끝났다. 예배 시간에 유난히 잦은 성경찾기(아마 20회는 찾는 듯)와 대다수의 성도들이 설교를 노트에 낱낱이 적어가는 장면도 매우 인상적이고 감동적이었다. 

 

  이 교회에서 유난히 내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은 눈시리게 또는 눈물나도록 간결한 작은 강대상과 그 장식이었다. 나는 차라리 "간결, 소박, 절제의 아름다운 미"를 이 강대상에서 보았다. 한국교회의 수십만, 수백만원 짜리 강대상보다 훨씬 아름답게 느껴지는 그런 것이었다. 예배후에 담임목사님은 한국에서 새 선교사가 왔다고 기념으로 전교인 촬영을 강추해서 사진 몇 장을 찍었다. 옆에는 킬리만자로 엄청난 깊이의 협곡이 있는 그야말로 낭떠러지 위에 있는 이 시골교회당은 내게 쉽게 잊혀지지 않을 듯 하다. 


눈물나도록 소박한 강대상의 눈시린 아름다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찬양대의 최고의 찬양!

귀요미! 이분도 예배를 위해 콤비마이로 정장하셨었다!

킬리만자로 산중턱 깍아지른 협곡에 위치한 오지 예배당. 왼쪽에 킬리만자로산을 깊게 지르는
협곡이 있다.

전교인과 기념 촬영 한 컷! "당신들과 내 남은 삶을 함께 하겠습니다. 그것이 저의 길입니다. 
기회를 주신 여러분과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예배당 입구 근처의 이름모를 눈부시게 아름다운 야생화! 참 아름다워라, 하나님의 세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