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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순례자의 항해일지

파도 속에 묻어둔 세월(항해일지 2)

by Visionary 2007. 12. 21.
 



항해위치
전북 군산시 옥도면 선유도
동경 126° 30″/ 북위 35° 50″
방위
군산항 남서쪽 31마일



섬 곳곳을, 그것도 남이 잘 가지 않는 한 두 세대가 있는 섬까지 다니다 보니 가끔
'섬 중에서 어디가 제일 좋은가' 하는 질문을 받는다. 혹은 방송국이나 신문, 잡지사에서
취재할 만한 섬을 상의해 온다. 놀러간다고 하면 전남 신안군의 홍도를 말해 주고,
이런저런 말이 많으면 선유도를 찍어(?) 준다. 지금껏 그렇게 해서 원망들은 적은 없었다.

선유도는 그런 곳이다. 카메라를 어느 방향으로 돌려도 찍을게 있다. 무슨 볼거리가 많다는
말만은 아니다. 망주봉이니, 평사낙안이니, 선유봉이니 하는 볼거리도 그렇지만 주변에 널려있는 것들이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다. 섬치고는 작은 섬이 아닌데도 사방 팔방으로 마치 문어발처럼 가늘게 뻗어있어
어디든지 서있는 그곳은 바닷가다(선유봉은 아님). 사진을 찍기는 찍어야겠는데 걷기를 아주 싫어하는 나는
선유도의 이 점이 좋다.

내가 선유도를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곳엔 선유도교회와 오흥덕 목사님이 있기 때문이다.
전국 619개 섬교회 가운데 좋은 소문을 가지고 있는 교회 중의 하나가 선유도교회다. 오 목사님의 가장 큰
특징은 말이 없다는 것이다. 그저 소리 없이 빙그레 웃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 선교회 박요한 목사님은
이런 그의 표정을 '소가 웃는 얼굴'이라고 하셨다. 카메라 슬라이드 필름 보관 파일을 보니 1991년 6월에
내가 선유도를 방문하여 오 목사님을 처음 만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벌써 15년이 넘었다.
섬이 아니라 해도 우리는 자주 만나는 편이다. 그러나 오 목사님에게서 들은 말은 별로 없다.

이 말은 역설적이다. 그는 굳이 말이 필요 없는 사람이다. 항해 도중 난파선처럼 찢긴 손님의 육신을 추슬러
주는 것은 그의 손과 발이지 결코 입이 아니었다. 점점 왜소해지는 섬교회의 대안 찾기에 골몰한 나에게 그는
깊은 성경 묵상으로 아침여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내가 찾아온 목적을 알고 있는 듯 했다.
몇 해 전 그가 군산에 있는 어느 대학의 '중국어학과'에 등록을 해 나를 긴장시켰다. 혹시 섬을 떠나
중국 선교사로 가려는 것은 아닌지 물어봐야겠는데 그저 웃기만 할 것 같아 묻지 못했다.

이렇게 말이 없는 그가 입을 열었던 적이 있다. 2002년 6월, 선유도교회가 새 예배당을 짓고 헌당예배를
드리는 날에 나는 비디오 촬영을 맡았다. 예배가 끝날 즈음 오 목사님이 인사말을 하는데 시작이 이랬다.

"선유도에 서른 넷에 와서 마흔 여덟 살이 되었습니다. 제 아내는 스물 아홉에 와서 마흔 세 살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뭐 어쨌다는 말은 아니고 단지 그렇다는 뜻으로 들으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나지막하면서
조금은 떨리는 듯한 그 말이 내 귀에는 천둥소리나 다름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카메라 삼각대가 없어
벽에 등을 기댄 채 손 떨림을 최소화하고 있는데 이 말을 들은 후 이마저도 포기했다. 이래저래 손 떨림은
마찬가지였다. 그후 4년이 또 지났다. 남들은 일 이 년이 멀다하고 떠나는 섬에서. -최종민

상영시간 : 4분 04초

배경음악
  • 곡명 : 당신의 넓은 날개를 펼치소서(Bred Dina Vida Vinger)/스웨덴 성가
  • 노래 : 시셀(Sissel)
  • 음반 : Summer Snow(유니버샬)
  • 이 곡은 스칸디나비아 전래 민요 리듬에 스웨덴어로 시편의 내용을 따온 스웨덴 찬송가다.
    수 백년에서 수 천년을 구전되어 내려온 북 유럽의 노래답게 신비함이 물씬 배어있는 노래다.
    국내 CF 배경음악으로도 사용되어 우리 귀에 익숙한 곡이다.
    노래를 부른 시셀 쉬르셰뵈는 별명 '노르웨이의 종달새'가 말해주듯 천사의 목소리를 가졌다.
    1969년 노르웨이 베르겐에서 출생한 그녀는 어릴 적부터 교회 성가대와 TV 탤런트로 활동하였다.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공식 주제가 'Fire In Your Eyes'를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와 함께
    부르면서 어느덧 그녀는 노르웨이의 국민 가수가 되어 있었다.
    시셀이 전 세계적인 가수로 도약한 것은 영화 '타이타닉'을 통해서다. 영화가 시작하면
    지극히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 그녀의 아리아를 만날 수 있는데, 영화가 그렇게 성공한 일면에는
    시셀의 목소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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