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늘 새벽은 빛의 전령사로 찾아온다!
  • 당신의 삶, 생명의 증거
  •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절규
일상의 삶터

그리스도인의 결혼 생활(남편과 부부 관계)

by Visionary 2020. 8. 28.

주께서 남편과 아내들에게

 

(혼인은 복음을 보여주는 극장입니다!)

 

에베소서 5:22-33

 

  말씀묵상을 나눕니다. 여러분이 너무 잘 아는 남편과 아내를 주제로 한 본문입니다. 저는 목사이기에 이 말씀을 너무 잘 알며 여러 차례 설교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묵상을 통해 전혀 다른 차원의 말씀에 담긴 영광과 도전, 감격을 경험했습니다. 부부와 가정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통해서 새로운 지평(地平)이 놀랍게 열렸으며, 그 신비를 깨닫고서 전율했습니다. 왜 그런지 이제 차근차근 함께 나누겠습니다.

 

1. 아내의 의무 - 남편에게 복종!(22-24)

1)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 – 마치 주님에게 하듯. 복종은 순종 이상의 차원이며 그렇다고 굴종이나 맹종도 결코 아니다. 복종은 자신의 이해타산이나 상태에 따라 하지 않는다. 복종의 어원은 “누구의 밑에 줄을 서다.”라는 뜻이다. 즉 권위와 질서의 차원에 관계된 단어다. 그래서 자신이 선택하는 순종 이상의 차원이다. 복종이란 단어의 어감 때문 혹시 굴종(屈從)이나, 맹종(盲從)으로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된다. 성경이 말하는 복종은 우열이나 서열이 아닌 권위와 질서가 그 핵심이다. 만약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권위 체계가 깨지고 질서도 붕괴된다. 그 결과 혼란과 무질서가 찾아오며 평화도 사라진다. 이것은 남편과 아내뿐 아니라 부모와 자녀, 스승과 제자, 상관과 부하 등 모든 관계에 적용되는 원칙이다. 권위와 질서는 하나님의 창조 원리의 가장 중요한 원리이며 원칙이다. 그러나 죄 때문에 권위와 질서가 깨졌고, 그 결과 모든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관계의 고통과 갈등을 겪으며 상처를 받는 현실이다.

 

2) 남편은 아내의 머리 - 23절은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는 이유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되심과 같은 관계로 설명하며, 남편을 아내(가정)의 머리로 본다. 물론 머리됨이 공동체의 권위와 질서를 그 근본으로 하지만 머리됨(Headship)은 꼭 그런 측면만 있는 것도 아니다. 구주’란 단어는 보호자, 유지자, 구원자 등의 뜻이다. 그래서 머리됨은 권위와 질서 말고도 돌봄, 책임, 공급, 인도의 다양한 차원을 품고 있다. 따라서 복종은 거듭 인격의 우열이나 신분의 차이, 서열이나 계급도 아니다. 머리됨은 창조부터 시작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을 통한 주님과 교회(성도들)의 관계로 이어진다. 이처럼 창조 사건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결혼을 통해 허락하신 가정은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공동체였고, 하나님이 직접 세우신 신적(神的) 기관(Divine Institution)이었다.

3) 주님과 남편 - 혹시 남편들이 이 구절을 오해할까봐 노파심에서 설명한다. 24절이 말씀하는 내용은 결코 남편이 주님이란 뜻은 아니다. 남편이 어찌 감히 주님과 같은 신적 존재이겠는가? 남편이 결코 주님이 아니다. 다만 이 구절은 동일한 원리가 적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구절을 남성 우월주의로 해석하거나, 아내에게 강요된 복종을 요구하며 부당한 권위를 행사하는 폭군의 근거로 사용할 수 없는 이유다. 남편의 권위를 인정하고 가정의 질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행하는 자발적인 복종이다. ‘범사’ - 모든 방식. 인간관계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복종의 범위를 넘어서 모든 방식으로 복종해야 한다.

2. 남편의 의무 – 아내를 사랑!(25-30)

우선 가장 단순히 분량을 보자. 아내의 의무는 겨우 세 절, 남편은 무려 다섯 절이 기록되어 있다. 남편의 의무가 아내보다 무겁다는 뜻이다. 왜 그런지 생각해 보자.

 

1)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위해서 희생하라(25)

- 그런데 아내를 사랑하며 아내를 위해서 희생함을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해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고 말한다.

①사랑하라 : 아내를 사랑하는데 그 사랑의 기준과 모범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렇다면 남편의 아내 사랑은 주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사랑하신 차원과 본질로 올라가야 한다. 무조건적, 비이기적, 절대적, 일방적, 주도적인 그 사랑 말이다. 이렇게 되면 남편들은 절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분명히 성경은 남편들에게 아내 사랑의 기준과 모범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제시한다. 그리스도인 남편들은 자기 아내를 이렇게 사랑하고 있는가?

 

②희생하라 : 주님이 교회를 사랑하심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도 절망스러운데 이젠 주님이 교회를 위해 자신을 주심같이 희생하라고 명령한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 그 완전한 희생 제물이 되신 사건을 아는가?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는 희생의 죽음이다. ‘주심같이’의 원어는 ‘넘겨주다’, ‘양도하다’, ‘포기하다’란 뜻으로 다른 사람의 유익과 쓸모를 위해 무언가를 포기하고 넘겨준다는 의미다. 본문에서는 예수님이 교회를 위해 완전히 자신을 포기하시고 완전하게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희생과 헌신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남편도 목숨 바쳐 아내를 사랑하며 위해서 희생해야 한다. 남편의 사랑과 희생은 자연스럽게 아내가 남편을 존중하며, 합당하고 인격적인 남편의 권위에 복종하게 한다.

 

이처럼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곧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왜 남편은 아내를 주님이 그러하셨듯이 아내에게 사랑과 희생을 베풀어야 하는가? 왜 남편의 아내 사랑과 희생의 기준, 롤 모델(Role Model,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직책이나 임무 따위의 본보기가 되는 대상이나 모범)을 주님으로 삼으라고 명령할까? 남편의 아내 사랑과 희생에 주님의 십자가 사랑과 희생의 비밀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남편의 아내 사랑에는 복음이 담겨 있어야 한다. 여기에 이르면 아내가 남편에게 주님께 하듯 복종하라는 수준 이상의 기준 앞에서 남편들은 절망하며 아내들은 고소하고 통쾌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니 억지 권위를 행사하거나 가부장적인 억압은 그리스도인 남편에게 있을 수 없다.

 

2) 남편의 사랑과 희생의 목적(26절)

–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사랑과 죽으심으로써 원하셨던 목적은 우리의 구원과 신랑 되신 그분의 신부다운 거룩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게 함이다. 주님의 십자가 죽으심으로써 교회(성도)는 ‘깨끗하고’ “거룩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해서 교회는 주님이 바라신 대로 그분 앞에 영광스럽게 서게 되었다. 이 원리와 똑같이 남편의 사랑과 희생을 통해 아내의 인격과 삶이 깨끗하고 거룩하며 영광스럽게 그 존재와 가치가 변화될 수 있다. 아내의 수준이 곧 내 모습이다. 나보다 낫다면 황송하고 감사할 일이고.

 

3) 남편의 아내 사랑의 방법(28-30)

- 이 문단은 사실 앞부분(25절)의 반복이며 강조다. 아내의 남편에 대한 의무와는 달리 길게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은 남편이 먼저 창조되었고, 아내는 돕는 배필로 지음을 받아 함께 가정 공동체를 형성해서 가정이 교회이며 하나님 나라의 원형인데 하나님의 질서를 볼 때 남편이 주도권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성경이 말하는 바른 권위에는 영광이 있지만 동시에 보다 무거운 책임이 따른다. 아내 사랑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동일하다. 아내를 타인으로 인식하지 말고, 나와 아내를 분리하지 말자. 아내와 나는 일심동체(一心同體)가 되어야 마땅하다. 한 공간에 살지만 정서적인 이혼 상태의 부부들이나 삶의 공유가 없는 부부들은 비성경적이다.

 

28절의 ‘할지니’로 번역된 헬라어는 ‘은혜를 지다.’ ‘빚지다’, ‘반드시 ~할 의무를 지다’라는 뜻으로 의무를 강조하는 단어다. 본문은 교회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고 내어주신 예수님의 은혜를 입은 남편들이 아내들에게 예수님과 같이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고 사랑해야 할 빚과 의무를 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아내에게 빚진 자다.”라는 의식이 남편들에게 있어야 한다. 30절에서 이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한 몸의 지체(팔다리와 몸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기 때문이라고 설명된다. 나와 아내는 혼인이라는 사회적 관계나 법적 관계 또는 성적 결합만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구원 받아 그분을 주님으로 모신 한 몸 된 생명의 관계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 이혼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며 허용되지 않는다.

3. 남편과 아내의 신비(mystery, 31-32)

  이어서 사도 바울은 창세기 2:24에 나타난 하나님의 창조의 원형으로서 혼인 제도의 본질을 가져와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설명한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이 구절에 나타난 혼인의 본질은 ⓵‘부모로부터 떠나’(부모로부터의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 독립) ⓶‘아내와 합하여’(“확고히 머물다, 굳게 결합하다, 힘써 좇아가다.”란 뜻으로 부모로부터의 독립과는 정반대로 남편이 아내의 정서와 성, 경제, 삶 등 모든 것에 의도적이고 지속적인 연합을 말함) ⓷‘서로 한 몸을 이룸’(총체적이고 통합적으로 서로 완전한 한 인격과 존재, 사람이 됨)의 세 가지다.

 

  이 혼인의 본질과 정신은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신부인 그리스도인의 영적 관계에도 동일하다. 즉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도 영적 가정의 본질과 정신을 담아야 하며, 작은 교회이며 하나님 나라인 가정도 동일해야 한다. 가정은 교회이며 하나님 나라다. 가정은 교회로 존재하며, 하나님 나라 현현(顯現 : 명백하게 나타나거나 나타냄으로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명확히 드러내시거나, 하나님의 영화로운 강림과 임재를 가리킴)의 현장이다.


  이것이 바울 사도가 혼인의 비밀을 크다고 하면서 단순히 혼인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한 이유다. 즉 혼인과 가정, 부부 관계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원리,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한 연합을 보여주고 경험하는 현장으로 하나님이 창조하셨다. 남녀의 결혼 생활과 부부 관계, 가정생활은 복음 안에서 이뤄진 하나님의 신비이며 선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가정과 부부 관계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도록 주님의 사랑과 성도의 순종을 남편과 아내가 서로 실천해야만 한다. 복음 안에서 서로 연합하며 한 몸을 이루어 교회가 되며,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고 아는 결혼과 부부 생활의 차원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다. 이것은 너무 놀랍고 우리의 상상과 지식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신비라고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