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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우물

오늘의 고난, 오늘의 부활

by Visionary 2011. 4. 24.

   한 주간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기도할 때 하나님은 차마 말로 다 나누거나 표현할 수 없는 복음의 은혜와 하나님의 임재, 영광으로 내게 찾아오시고 만지셨다. 바울 사도의 셋째 하늘 체험은 아니지만 내 인생 가운데 또 다른 차원의 복음과 하나님의 충만하심에 대한 깊고 신비한 체험으로 역사하셨다. 특히 금요일 새벽기도 중에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을 묵상하면서 기도할 때에 선명하게 말씀으로 계시하신 것이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얼마나 아프셨을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참혹하셨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헤아릴 수 없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심정을 알고 체험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 그리고 성경 어디에도 드러나지 않았지만 성령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얼마나 고통스럽고 두렵고 저주스러웠으면 27:46 예수님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하셨을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22:1.

  십자가 사건은 버림받음 즉 소외와 망각 당함, 그리고 슬픔, 아픔, 단절이다. 다른 단어를 덧붙일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 버림받음과 잊혀 짐, 슬픔과 아픔의 분량과 정도가 아담으로부터 온 인간이 지은 죄, 또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그 결과인 지옥의 어두움과 무서움에 똑같이 비례한다. 창조주이시며 영이시고 영원히 존재하시며 전능하시고 거룩하시며 절대자가 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 인간의 이성과 지식으로는 절대 알 수 없는 삼위일체 하나님 사이의 완전한 연합과 신비와 일치, 교제가 영원부터 영원까지에 있어서 단 한 번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깨져버렸다. 성부 하나님이 성자 하나님을 죄인들의 대표로 간주하시고 모든 죄에 대한 진노와 저주를 쏟으셨으며 심판을 집행하셨고, 예수님은 그것을 단 하나도 남김없이 받으셨기 때문이다.

   우리 모든 눈물 다 쏟아도 주님이 흘리신 눈물 한 방울도 되지 못하고, 모든 피 다 쏟아도 주님이 흘리신 피 한 방울 되지 못할 터인데 왜 그렇게 하셨을까? 삼위일체 하나님이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시기 위해 그날 십자가 죽음이 있었던 날 어떤 일을 몸소 당하셨을까? 삼위일체 하나님처럼 깊은 상처, 아픔, 슬픔, 눈물, 단절, 소외를 당한 존재가 있을까? 역사에서 그리고 어떤 인간들에게도 그런 것은 없다. 오직했으면 다윗의 입을 빌어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을까?

   그렇다면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님 또 성령님이 내 구원을 위해 치르신 대가가 무엇이며 나는 이 사실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 정도로 나를 사랑하시고 은혜주시며 구원하셨다면 내가 포기하지 못하거나 비우지 못하며 맡기지 못할 게 무엇이 있겠는가? 나는 그날 새벽기도 가운데 삼위일체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속으로 들어갔으며 십자가 현장에 임재하신 삼위 하나님의 심정을 몸으로 체험하고 깨닫는 영적 신비를 경험했다.

   당신에게 구원의 십자가 복음은 무엇인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은 오늘 바로 지금 여기에서 매일 경험되는 실체인가? 당신 평생의 소원이 그 복음과 하나님의 충만하심을 더 깊이 더 깊이 알아가고 누리는 것인가? 고난, 죽음, 부활은 과거사건이 아니라 매일 진행되는 현재진행형이다. 그 과정을 통해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전부가 되어 가기 시작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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