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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교회론

교회, 예수 공동체 가족의 삶

by Visionary 2022. 9. 7.
 
  가족과 가정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연상되는 이미지는 무엇인가요? 사람 따라 다 다르겠지만 모든 사람이 공감하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따스함, 운명 공동체, 삶의 요람, 공동체, 희로애락, 핏줄 ---.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우리의 생명이 태어나고 죽음을 맞이하는 곳이 바로 가정이죠. 인간관계의 첫 경험 장소이면서 가장 중요한 인간관계를 배우며 익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성인이 되어 가정을 떠나며 새 가정을 꾸릴지라도 여전히 내가 태어나고 자란 가정은 내 안에 존재합니다. 역기능 가정에서 자라난 사람들이 겉으론 성인이 되었지만 그 내면은 어린아이로 존재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을 심리상담학에서 성인아이(Adult-child)라고 부릅니다.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은 이 땅의 가정에 완전한 가정이 없으며, 완전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가정마다 문제가 존재하는 엄연한 현실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 정도가 심하지 않으며 기본적인 가족 관계의 우애와 화해, 사랑과 용서가 제대로 작동할 때 순기능 가정이라고 부릅니다. 역기능 가정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많습니다. 저는 목회 현장에서 역기능 가정의 다양한 모습을 숱하게 봤습니다. 역기능 가정의 가족 구성원들이 경험하는 인생의 고통과 아픔, 슬픔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 안에 신음하고 감추어진 우울함은 목사인 제게도 참으로 벅차고 힘든 과제였습니다.
 
  깨어지고 부셔진 가정에서 자라난 사람들의 내면을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도 이 문제는 여전히 존재하는 현실을 수없이 목격했습니다. 그렇다면 방법이 없는 건가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복음은 영적 구원뿐 아니라 우리의 정서, 대인관계, 심리, 세계관 등 모든 것을 새롭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구원을 결코 개인의 영적 영역으로만 제한하는 비성경적 관점을 버려야 합니다. 은혜로 주어진 구원은 전인적이며 통합적이고 총체적입니다. 구원이 변화시키지 못할 영역은 온 우주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물론 이 원칙은 성경적으로 분명합니다만 그 실제 적용은 그리 간단하거나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았는데 왜 그 성격, 성품, 생활, 인격은 변화가 없나요? 왜 아버지, 남편, 어머니, 부인, 자녀, 부모로서의 모습엔 변화가 없나요? 구원을 받지 못한 경우도 있겠지만 받았어도 복음의 능력이 총체적으로 나를 통치하지 못하며, 내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이 일하시지 못하도록 내가 제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뿐 아니라 우리의 모든 인생을 총체적이며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은 복음의 통합성과 총체성을 성경대로 바르게 알고 믿으며,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이와 똑같이 중요한 또 하나의 방법은 교회 공동체에서 예수 가족으로 살고, 예수 가족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진술에 따르면 핏줄로 이어진 육신의 가족보다 훨씬 강력하고 풍성한 것이 바로 하늘 가족인 예수 공동체, 즉 교회 공동체입니다.
 
  앞의 내용이 개인의 책임이며 과제라면 뒤의 내용은 너와 나 우리 모두의 책임이며 과제입니다. 과연 이 땅위의 지역교회 공동체에서 우리는 하늘 가족으로서의 삶과 예수 공동체를 경험하고 있는지요? 유감스럽게도 극소수를 제외한 대다수는 아니라고 감히 잘라 말합니다. 그것은 우리시대의 교회가 성경이 말하는 바른 복음을 외면했고, 성경적인 교회론 조차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뿐 아니라 비록 안다고 해도 그 지난(至難)한 과정에 뛰어들며, 그 실천을 위한 엄청난 대가를 치르기 싫어하는 우리의 본성과 개인주의, 편의주의 및 상업주의에 깊게 물들은 시대 문화 때문입니다. 이 시대문화가 세속문화로 교회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세상 속의 교회(Church in the world)’가 되어야 마땅한데 ‘교회 안의 세상(World in the church)’이 판치는 슬픈 현실입니다.
 
  우리의 교회 생활을 정직하게 돌아볼까요? 나는 다른 형제, 자매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고 죽으시며 부활하셔서 구원하신 존귀한 자녀로 믿고 실제 그렇게 상대하는지요? 우리의 모든 희로애락과 물질, 정서와 일상, 슬픔과 기쁨은 성령 안에서 공유되며 나누고 있는지요? 나는 다른 형제, 자매를 예수님의 핏줄로 새롭게 만들어진 가족으로 믿고 사는지요? 다른 형제, 자매의 됨됨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은혜로 용납하며 교제하는지요? 어떤 조건이나 기준을 따라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예수 가족임을 믿고 더불어 살고 사귐을 갖는지요?
 
  만약 교회 공동체 인간관계와 사귐에서 “어떤 사람이 불편하거나 용납되지 않는다면, 내 심리상태와 생활에 따라 좋고 나쁨이 결정된다면, 나에 대한 태도와 행동 때문 피하거나 무시한다면” 분명 우리는 예수 가족으로 살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경우)은 자신의 이익이나 조건과 기준을 설정하고 교회 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실제로 교회 생활을 하고 있는 경우가 아니며, 하늘 가족도 아닙니다. 예수 공동체를 이 땅에서 교회를 통해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영원한 천국 공동체에 들어가서 살 수 있겠습니까?
 
  두 말할 것도 없이 예수 공동체의 삶, 하늘가족의 삶에는 자기 부인과 내려놓음, 자기 포기 등의 영적 덕목이 요청됩니다. 불편함을 무릎 쓰며, 손해를 보고, 섬기는 희생을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의지나 도덕적 결단 또는 윤리적 결심으로 불가능합니다. 오직 하늘의 은혜에 사로잡히며 주님의 사랑이 내 심령이 있을 때에 가능합니다. 이 땅의 나그네 인생길에서 그 힘들고 외로운 여정을 살아가려면 예수 공동체의 가족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구원은 개인적인 은혜이지만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명령하신 필수적인 삶입니다. 이 명령에 순종하면 우리는 상상할 수 없는 하늘의 위로와 평화를 교회에서 누릴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외로운 늑대처럼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교회 안에는 어떤 고도(孤島)도, 어떤 형태의 소외도 존재하지 않아야 합니다.
 
  비록 허물 많으며, 서로 상처를 주고받지만 그래도 우리는 예수 가족입니다. 그래서 더욱 내게 주어진 또 주신 형제, 자매들이 그토록 소중하며 사랑스럽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역’ 때문이 아니라 ‘어떤 관계’를 위해 먼저 부름을 받았습니다. 함께 가족으로 더불어 살지 않겠습니까? 부디 제 가족이 되어 주십시오. 저도 당신의 가족으로 살겠습니다. “당신을 사랑하고 또 사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 안에서!”
 
Love in Christ changes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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