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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교회론

구원의 새 언약 공동체

by Visionary 2020. 8. 23.

  교회는 주 예수께서 그 피로써 값을 치르시어 구원한 자들로 세우신 하나님의 공동체이다. 우리는 주님의 구원 사건을 신학용어로 새 언약(신약)이라고도 일컫는다. 그러나 교회를 '구원의 새 언약 공동체'라고 말할 때 결코 그냥 넘길 수 없는 중대한 의미와 차원이 있다. 이것은 교회 본질과 정체성을 결정짓는 최우선의 기초가 된다. 그뿐 아니라 성경적인 교회로 세워지는 필수 요소가 바로 이것이기도 하다. 교회가 구원의 새 언약 공동체임을 그 뜻으로만 아니라, 실제 모든 교회 구성원들이 최선을 다하여 실천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뜻과 실천을 살펴보자.

첫째, 교회의 주권과 그 통치는 철저하고 완전하게 주님께 달려있다.

  두 말할 것도 없이 교회는 주님이 구원의 신앙 고백 위에 세우신 주님의 교회이다(마 16:16). 교회는 주님이 피로 값 주고 사신 공동체이며, 십자가 피로써 성취된 언약 공동체이다. 이 세상의 어떤 조직이나 단체 또는 공동체와도 그 성격과 근본이 완전히 다르다. 한 마디로 신적 공동체이다. 그래서 교회의 머리는 주님이시라고 성경은 분명히 선언하다. 그렇다면 교회의 모든 주권을 가지신 주님이 교회를 통치하심이 마땅하다.

  그런데 솔직하게 말해 보자. 정말 우리가 속한 모든 지역교회에서 주님이 주권을 가지시며 그 주권을 따라 통치하시는가? 지상교회의 불완전성을 핑계로 은근슬쩍 넘어가서는 안 된다. 비록 때론 우리가 머리되신 주님의 주권과 그 통치에 불순종할 때가 있지만, 그것은 고의로 주님의 주권과 통치를 무시하며 반항하거나 머리 행세를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주님의 주권과 통치에 대한 철저한 복종이 없기에 오늘 이 땅의 교회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대립, 반목과 질시는 얼마나 심각하게 교회를 병들게 하는지! 게다가 교회의 직책과 사역, 교회 생활 연륜을 마치 일종의 권력으로 여기는 천박하고 비성경적인 가치와 태도가 질병처럼 널리 번져있다. 이것이 우리가 그토록 말하는 종 되신 주님, 섬김의 주님을 따라가지 못하게 하는 결정적인 이유이다. 그리스도의 주되심(Lordship of Christ)에 대한 철저한 인식과 겸손한 항복만이 섬김의 삶을 가능하게 한다. 종이 되는 것과 섬김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나 태도에 앞서서 나 자신을 주님의 주권과 통치 아래 항복한 사람들의 자기 인식에서 드러난다. 즉 종의 행동이나 삶보다도 자신을 종으로 고백하는 그 자체가 더 우선이고 중요하다.

  이 문제만 해결되면 목사, 장로의 대립이나 다툼이 사라질 것이다. 교회의 분열이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주님이 그 공동체와 구성원들에게 가장 놀랍고 아름답게 인도하시며, 주님의 나라를 위해 열매 맺는 공동체로 사용하실 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두려운 게 없다. 피조물이며 오직 은혜로 구원 받은 우리가 어찌 주님의 주권과 통치에 도전하며, 부질없는 자존심과 야망 때문 감히 주님의 주권과 영광을 찬탈할 수 있겠는가? 말이 아니라 실제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 특히 지도자인 목사(교역자)와 장로부터 주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낮추며, 종이 되는 은혜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중요한 원리이며 실천이다.

둘째, 교회는 지체 상호의 헌신의 약속을 요구한다.

  교회를 구원의 새 언약 공동체라 말할 때 주님과 나 사이의 주권과 통치뿐 아니라, 수평적인 차원의 관계에서도 그 적용을 성경은 요구한다. 다시 말해서 머리되신 주님의 주권과 통치를 따라 나와 너 사이의 관계와 교제가 이뤄져야 한다는 말이다. 현대인의 개인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은 공동체보다 개인에게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론 하나님의 창조 원리를 따라 한 개인의 중요성과 가치는 성경대로 충분히 존중되며 인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는 한 개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개인과 개인이 이루는 가정, 궁극적으론 인간과 하나님이 하나 되는 공동체(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이었다.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뜻이나 취향, 방식과 관계없이 개인적인 구원과 동시에 교회 공동체 더 넓게는 하나님 나라 공동체로 소속되며 살아가도록 되어 있다. 죄의 특성이 분리이며, 하나님으로부터의 독립과 공동체의 파괴라면 구원은 그 정반대의 성격을 갖는다. 교회는 결코 구원 받은 개인의 단순한 집합체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피로써 영원히 맺어진 구원의 공동체이다. 바로 이런 특성 때문에 교회는 그 어떤 것으로도 사람을 차별하거나 소외시켜서는 안 된다. 배움, 소유, 환경, 신체, 출신, 신분 등 모든 것이 그렇다. 구원은 그 모든 다름과 차별을 완전히 초월하는 하나님의 새로운 공동체로의 초청이다. 교회가 내부에서 뿐 아니라 심지어 교회 사이에서도 그 크기와 규모 및 지명도, 재정, 프로그램 따위로 서로를 가른다는 것은 비극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선 한 교회 내부에서 이것은 구체적으로 실천되어야 한다. 교회 구성원이 되었을 때 더 이상 자기를 주장해서는 안 된다. 무의미한 출석이나 소극적인 태도, 방관자로 남아 있는 것도 교회의 공동체성을 파괴하는 것이다. 주님이 허락하신 영원한 하늘가족인 다른 지체와 나는 주님의 피를 통해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이다. 나는 다른 지체를 위해 주님의 수준과 방식으로 헌신해야 하고, 다른 지체도 나에게 그렇게 해야 한다. 익명성이 판치며, 개인주의가 넘실대는 시대에서 이것은 불편과 모험이며 구속이 된다. 그럼에도 구원은 그것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성경적인 교회는 이것을 외면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 다수의 사람들을 모으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구성원들이 구원의 사건을 통해 상호 어떤 영향과 삶을 나누는가? 공동체를 통해 어떤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고 있느냐? 이것이 건강하며 성경적인 교회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교회는 구원의 새 언약 공동체이다. 다시 한 번 이 소중한 진리를 굳게 붙드는 은혜를 소원한다. 그리하여 이 땅의 모든 교회마다 머리되신 주님의 주권과 통치가 영광스럽게 나타나며, 교회 안의 모든 불평등과 소외가 사라지며, 모든 지체들이 서로를 위해 주님처럼 자신을 헌신하는 모습이 회복되길 다 같이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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