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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목회

나는 목자(목사)다! - 1

by Visionary 2012. 6. 11.

나는 과거 나 자신에 대해 늘 나는 아직 목사 아닌 목사 되어가고 있는 목사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담임목사에서 은퇴한 지금이야말로 비로소 나 자신의 정체성이 목사 아니 좀 더 정확히 성경대로 목자임을 깨닫는다. 목자(牧者)란 말은 ‘교회를 먹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교회를 양 무리로 보고 그들을 먹이며 치는 사역자를 가리켜 일컫는 말이다. 성경에 나타난 목자와 양의 이미지를 가지고, 교회와 교역자의 관계를 비유하면서 만들어 낸 단어이다.

사실 ‘목사’란 번역은 에베소서 4장의 번역이기 때문에 원어 그대로 직역하면 분명 목자다. 목자와 목사는 내용과 어감이 서로 차이점을 갖는다. 추측하길 우리 유교문화의 소산에서 비롯된 스승과 가르침에 초점을 둔 번역이라고 한다. 물론 목사의 앞 부분 ‘목(牧)’은 한자(漢子)에서 “(짐승을) 치다.” 라는 뜻을 가지니까 목자란 원어와 일치된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목자와 목사는 그 내용과 어감이 다르다.

목사하면 목자의 개념보다는 가르침과 스승에 강조점을 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목사라고 하면 아무래도 목양 자체를 순전히 강조하는 목자라는 단어와 비교할 때 가르침이 지적 전달 수단처럼 느껴진다. 목자란 단어의 이미지는 영적 부모의 마음으로 양 무리를 위해 생명을 바치며, 돌보며, 먹이고 인도하는 것이다. 가르침은 그 목적을 위한 기능이며 수단이다. 요한복음 10장은 이 점에 대해 가장 뚜렷하고 아름다운 그림으로 우리에게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나는 어떤 목자인가?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의 마음을 따르려는 목자다. 그전에는 목자 아니었는가? 한참 광풍처럼 인기를 끌었던 “나는 가수다.”에 출현하지 않는 다른 가수들은 가수가 아닌가? 그건 아니다. 다만 가장 가수다운 가수, 얼굴이나 마케팅, 이벤트, 기획으로 만들어지거나 노래 아닌 다른 요소로 확인된 가수가 아니라 노래를 진짜 잘하고 제대로 하는 가수가 “나는 가수다.”에 나오는 사람들이다. 목사도 똑같다. 목자로서 양을 바르게 양육하며 가장 탁월하시고 선하신 예수님의 마음으로 예수님처럼 목양하는 사람이 목자다. 목자는 상담가, 경영자, 교사, 행정가, 관리자가 아니다. 그건 필요한 기능일 따름이다. 본질이 아니다. 목자의 정체성과 모든 사역의 출발점은 목양이며 목자됨에서 시작된다고 굳게 믿는다.

나는 서남해 낙도 순회 전도자이며, 성서공회 권서였고, 지역교회 전도사였던 조부와 평범하지만 지극히 올곧게 목양일념으로 평생을 보낸 부친을 통해 그 길을 가는 목자의 갈등과 아픔을 몸으로 체험하며 살았었다. 사실 사춘기를 지나면서부터 소명을 받기까지 늘 가졌던 목사직에 대한 거부감의 뿌리는 선한 목자로서의 기쁨과 감사, 보람도 있지만, 적어도 그 과정의 피눈물과 아픔, 슬픔이 사람으로 감당하기 어려움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타협하지 않으며, 다른 기능이나 사역보다는 오로지 목자로서의 한 길을 가려는 모든 목자들에게 공통된 경험이었다. 결국 나도 하나님의 소명을 따라 이 길에 들어섰고, 지역교회 담임목사로서 20년 사역 후 은퇴했지만 그 이후에도 이것은 나를 따라다니는 중요한 기도제목이었고 고민이었다. 나는 예수님 같은 선한 목자인가?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해 담대하게 고백할 수 없었던 것이 솔직한 내 모습이었다. 그래서 지나가는 말이 아니라, 나는 목사 되어 가고 있는 목사라고 생각하며 성도들에게 말하곤 했다.

그런데 놀랍게 하나님은 목회 은퇴를 앞둔 시점에서 선교준비를 위해 입학한 경북 김천대학의 선교과에서 만난 청년들과 그들을 소그룹 공동체로 양육하고, 공동체 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내 정체성과 목자로서의 영성에 대해 명확히 깨닫도록 훈련시키셨다. 그뿐 아니라 김천대학에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훈련은 다양한 사건과 관계, 경험, 환경을 통해 계속되었다.

선교를 위해 결단한 너무 이른 목회 은퇴와 원로목사 추대, 2010년 6월에 1개월 동안의 아프리카 탄자니아 기아대책 봉사단 훈련 과정의 말라리아 발병, 직후 케냐에서의 전신 세균중독, 2011년 5월 해남 상마도 섬 사역 방문시 야간 조난(30분 거리를 짙은 해무로 4시간 30분 만에 겨우 도착), 장애를 겪고 있던 형님의 별세, 필리핀 출국과 대상포진 투병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은 선교사역을 위해 나를 용광로에 집어넣고 최후의 담금질로 연단시키셨다. 그 연단의 핵심내용이 바로 “나는 목자다.”라는 고백이었다.

그러나 목자로서의 정체성과 본질 회복뿐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그 깊고 참된 영성을 새롭게 보게 하셨다. 그 전에 상대적으로 천박하며 피상적인 영성을 버리게 하셨다. 그래서 이젠 내 안에 주님이 살아계시고 내가 참 그리스도인이며 내 모든 것이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는 신비한 과정이 신앙의 길임을 깨닫는다. 어설프게 또는 인간의 잡다한 노력과 행위로 또는 일시적이며 기복이 심한 그런 영성은 아니다.

선한 목자의 마음은 무엇인가? 삯꾼과 선한 목자인 예수님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양떼를 향한 태도와 관계에 있다. 즉 목자 자신의 특성이나 자질보다 목자와 양의 관계성에 있다. 삯꾼은 근본적으로 양떼를 돌보지 않는다. 그러나 선한 목자는 사랑으로 양을 돌보기에 양들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양들과 개별적인 관계를 맺는다.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선한 목자는 결코 양들을 생계수단으로 여기지 않고 자신의 삶의 한 부분으로 여긴다. 곧 함께 살아가는 삶의 대상이자, 자기 삶의 목적으로 삼는다. 이런 관계로 맺어 있기 때문에 위기의 순간에 양을 위해 목숨을 포기할 수 있다.

선한 목자가 양을 안다는 것은 단순한 인식이나 지식을 말하지 않는다. 상호 깊은 신뢰와 친밀한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인격적인 관계와 교제를 말한다. 삯꾼은 돈을 목적으로 하는 계약관계 속에서 양을 돌보지만, 선한 목자는 양들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면서 양들과 개별적이며 친밀하고 신뢰할 만한 관계를 맺는다.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은 나 같은 지옥 갈 죄인의 영원한 운명을 바꾸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셨다. 바로 이 구원의 은혜와 사랑은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의 마음,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 또한 목자로 살아갈 것을 명령한다.

우리에게 선한 목자의 마음이 있고, 내가 목양하는 성도들과 인격적이며 개별적인 목양의 관계가 있다면 수 천명, 수 만명이 문제가 되겠는가? 반대로 그렇지 않다면 단 두 명을 대상으로 목회한다 해도 그는 참된 목자는 아닐 것이다. 본질은 숫자가 아니라, 목자로서의 심정과 성도들과 맺고 있는 목양의 관계성에 달려 있다. 물론 당연히 구조적으로 너무 많은 양 무리와 한 명의 목자가 인격적이며 개별적인 목양의 관계를 맺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은 우리의 목회규모와 교회 크기에 대한 시사점을 주는 중요한 대목이다. 언젠가 홍정길 목사님이 내게 하신 말씀이 있다. “내가 무슨 목사냐?, 교인들 이름도 제대로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데--, 너는 나처럼 목회하지 마라.” 왜 그 분이 훌륭한 목회자가 아니며, 전혀 목양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간접적인 목양, 관리하는 목양의 한계와 그에서 비롯된 성경적인 목자로서의 자괴감을 표현하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하나님은 나를 훈련하시는 여러 상황과 사건들, 과정, 양육하는 대학생들과의 관계를 통해 한 영혼을 목양하는 목자의 참 심정과 태도, 양에 대한 목자의 희생과 사랑을 몸으로 새롭게 깨닫게 하셨다. 최근 2-3년 동안의 이런 훈련과 경험은 과거 내 생애에 있었던 어떤 고난이나 사건과도 비교할 수 없는 충격적이며 벅찬 훈련이었다. 광야학교도 보통 광야학교가 아니었다. 한정된 지면 때문 자세히 말할 수 없지만 그야말로 무지막지하게 세상 그 어떤 훈련이나 연단과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광야학교 입학을 통해 목자의 정체성과 태도, 심정, 양과의 관계를 철저히 깨닫고 살아가도록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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