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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목회

목회와 사람 살리는 목양

by Visionary 2012. 2. 6.
지금 나는 이무석 교수의 책 '30년만의 휴식'을 다시 소화해서 독후감을 올리고 있다.
거기에서 개인적으로 목회를 위해 꼭 필요하며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상담과 치유 과정의 전이, 역전이에 대해 짧게 나누길 원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목회 현장에서 매우 자주 부딪히며 직면하는 현상이며 목양의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잘 이해하고 적용하면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참고로 나는 심리상담을 전공하지 않았으며,
다만 옛날에 목회상담 연구원에서 1년을 간략하게 개괄적으로 공부했었고, 교회 밖에서 매우 짧게 그룹상담의 이론과 실제를 경험한 적도 있다. 


1. 용어 정의
우선 이해를 돕기 위해 용어에 대한 간략한 정의를 내린다. 

1) 전이(transference)

- 내담자가 부정적 감정과 상처 및 과거 경험을 상담을 통해 상담자에게 공유시킨 상태.
내담자는 전이를 통해 상담자를 자기에게 상처를 주었거나 억압, 폭력, 무시, 통제했던
대상자와 동일시하며 자기가 가지고 있던 감정을 삼담자에게 투사한다. 

2) 역전이( Counter transference)

- 반대로 상담자의 입장에서 내담자의 그런 감정과 상처, 내면의 문제를 수용하고 공감해 주는 것. 

3) 전이 치유(transference cure)

- 정신분석 과정에서 내담자와 상담자 사이에 발생하는 전이와 역전이를 통해 일시적인 만족이나 해결 또는 치유가 되는 것.

2. 전이와 역전이의 관계 (이무석 교수의 견해)

"현대 상담학에서는 전이를 무의식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한다.
전이는 무의식을 보여줄 뿐 아니라, 대단히 강력한 힘도 갖고 있다. 증상을 일시에 제거하기도 하고, 악화시키기도 한다.
" 내담자의 전이욕구가 상담자를 통해 충족될 때 극적인 효과를 내기도 한다.
반대로 거절당하면 내담자에게 상처를 주었던 대상과 동일시하면서 상담자를 공격하거나 거부하기도 한다. 
전이와 역전이가 바르게 사용되며 균형과 조화를 이뤄갈 때 전이 치유(transference cure)가 일어난다.
"그러나 전이만족에 의한 증상의 호전은 일시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신분석에 방해가 된다.
전이 만족이 유아기에 충족되지 않았던 육구를 채워 주긴 하지만, 무의식에 대한 탐구 의욕은 악화되기 때문이다."

3. 근본 치료

"근본적인 치료는 자신도 몰랐던 무의식적인 갈등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되었을 때 가능하다.
때로 사람들은 자기의 무의식으로 떠나는 여행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두렵기 때문이다.
자기의 내면과 무의식의 세계는 정면으로 들여다보기 어렵고 힘든 세계이다. 

어떤 사람들은 문제가 생겼을 때 자기분석을 하며, 의식의 뒤쪽에 있는 무의식에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 무의식의 문앞에서 도망가고 싶어한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안의 갈등을 해결하고 진정한 평안을 찾기 위해선 무의식의 탐구를 계속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과 행동을 지배하는 것의 대부분이 무의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문가에 의한 객관적이며 기술적인 접근과 치료가 필요하다.
이런 이유로 인해 교회 내부에서 내적 치유 수련회의 한계가 있는 것이다.
즉 자기와 너무 가깝고 잘 알며 교제를 계속 해야 할 사람에게 내면의 진짜 문제를 노출하기란
매우 어렵고 그후에도 후유증이 만만하지 않다. 내면세계의 치유와 관계된 수련회 같은 경우에 외부 모임을 이용해야 한다.
심지어 목사와의 상담이라 해도 이것은 동일할 수 있다.
객관화에 도움이 되지 않고, 완전한 노출은 오히려 수치감과 회피심을 주기도 한다.
이것이 간혹 교회를 떠나는 사유가 되기도 한다.

4. 목회 현장에서의 적용

굳이 정신분석을 배우거나 이런 단어로 표현하지 않아도
목회자는 그 사역의 특성과 하나님이 주신 영적 통찰력 및 말씀과 성령님의 능력을 따라
같은 성격의 사역을 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물론 학적 체계나 전문성에는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관심이나 초점은 그 전문성이나 체계에 있지 않다.
실제적인 목회 현장에서의 임상이나 적용에 있다.
우리가 목양하는 성도들을 상담하고 심방할 때 위에 기록한 정신의학적 용어와 과정, 현상들을 경험하며 실천하게 된다. 
우리는 전문가가 아니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 성령님의 능력 및 사랑의 공동체인 교회를 통해
강력하게 성도들의 내면세계에 대한 인식과 접근, 상담과 치료를 할 수 있다.
물론 가능하면 이런 심리상담이나 정신과 학문에 대해 배우는 게 매우 당연하고 좋겠다. 

문제는 실제 현장에서 성도들의 내면세계에 대해 상담하며 공감해주고 치료하려 할 때에
우리도 전이와 역전이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정신과 의사들도 그렇지만 더욱 우리는 그들과 다른 하나님의 마음, 주님의 심장으로 접근하며
그리스도의 피로써 구원받고 값 주고 산 바된 하나님의 자녀들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전문 심리상담가나 정신과 의사에 훨씬 못 미치지만
그 마음과 태도는 그들과 비교할 바 없는 탁월함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실제 이런 현상에 대해 인식하고 처리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예를 들면 성도들의 내면세계의 장애물(상처 또는 쓴 뿌리 등으로 표현하는)에 대해 접근할 때
그들이 목회자에게 전이하게 된다.
그럼 당연히 목회자는 역전이를 경험하게 되는 데 과연 어디까지 전이를 수용하고
어떻게 역전이를 감당해야 하느냐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성도의 지나친 전이는 목사에게도 감당할 수 없는 역전이 스트레스가 되며,
실제 이무석 교수의 말처럼 근본 해결에도 결코 도움이 안 된다.
일시 좋아지고 만족하는 것처럼 보이며 잠간 치유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 뿌리는 여전하다.

아울러 과도한 의존과 심지어 목회자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지고
목회자도 중심을 냉정하게 유지하지 못하면 결국 상대에게 휘말리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 
그렇다고 전이를 받아주지 않고 남의 문제처럼 지나치게 객관적으로만 듣고
공감도 안 해주면 신뢰를 상실하고 마음을 닫으며, 어떤 해결의 실마리도 풀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유곡의 현상에 처할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주님의 사랑으로 성도들의 전이를 수용하고 공감하되,
근본 문제 해결을 위해 어느 선을 설정하고 더 이상의 개인적이며 깊은 개입을 금해야 한다.
그럼 근본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무엇보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성령님의 개입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소그룹 공동체가 실제 생활에서 사랑, 위로, 격려, 섬김으로 세워야 한다.
그뿐 아니라 무엇보다 근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성도 중에 전문 심리상담가나 정신과 의사가 있으면
그들에게 의탁하고 없으면 외부에 위탁해서라도 해결해야 한다. 이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아무튼 내면세게의 근본적인 치유와 해결 없이는 아무리 믿음 좋고 기도나 봉사 많이 해도
그 성품과 인격, 삶이 전혀 변화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쓴 뿌리가 공동체를 파괴하는 해악으로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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