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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우물

살아계신 나의 하나님을 믿사오며

by Visionary 2020. 12. 9.

당신은 사도신경을 믿는가?

 

  우리는 예배 시간에 사도신경으로 우리가 믿는 신앙의 핵심을 고백합니다. 사도신경은 교회의 역사를 통해 확증된 성경의 핵심 내용을 공교회의 연구와 회의에서 제정한 공교회와 그리스도인 신앙의 규범입니다. 비록 교리와 교단이 다르고 신학의 차이점이 있어도 사도신경의 고백에 동의하는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복음주의의 범주에 포함됩니다. 따라서 “당신은 사도신경의 내용을 믿는가?”라고 물으면 두 말할 것도 없이 모든 그리스도인이 “나는 믿는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질문에 담긴 그 깊은 의미를 알면 우리의 믿음이란 단어가 얼마나 싸구려로 남발되며 오용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신경(信經)은 영어로 creed인데 라틴어의 credo(나는 믿는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사도(使徒)들의 고백 혹은 사도들의 신앙고백(信仰告白)이라 할 수 있습니다. 라틴어(고대 로마어) Credo(크레도)는 “나는 믿는다.”란 뜻으로 “믿다, 위탁하다, 맡기다, 신뢰하다, 신용하다.”의 다양한 의미를 갖습니다. 이 단어는 Cre(크레)와 Do(도)의 결합어로 Cre는 ‘심장’을, Do는 ‘내가 드린다.’란 뜻으로 이 단어를 결합하면 “내 심장을 드린다.”란 뜻입니다.

 

  “내 심장을 드린다.”는 ‘크레도’는 영어 Creed(교리, 신념, 신조)의 어원으로 신경(信條, creed)은 신앙고백을 위해 기독교 교회의 핵심을 간추려 적은 공식적이고 권위 있는 진술을 지칭하는 말로 보통 사도신경, 니케아 신조 등 고대 신앙 규칙 문서들을 일컫습니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교회가 공적으로 인정 또는 제정한 모든 신앙 표준 문서를 총칭해서 쓰기도 합니다.

 

이 고백에 내 심장을 드립니다.


  따라서 “전능하사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하는 고백은 “우주와 온 세상을 창조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내 심장을 드린다.”는 뜻입니다. 이 고백이 어찌 시시하거나 사소하며 기계적인 입술의 말로 그칠 수 있겠습니까? 말씀만으로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 혼돈과 어둠의 상태에서 오직 말씀만으로 창조를 시작하신 하나님! 이 하나님이 내 아버지이십니다. 이 단순하고 명확한 진술에 내 심장을 드려 믿는다면 인생의 모든 문제는 완벽하게 해결됩니다. 하나님의 창조 역사와 주권의 통치를 내 심장에 담고 산다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이 신앙 고백을 어떻게 붙들고 평생 살아가느냐 하는 엄청난 숙제가 우리에게 있지만 적어도 하나님의 약속은 그렇습니다.

  내가 위대한 신앙을 갖는 것이 아니라, 위대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신앙의 본질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이 사실을 자기 자녀들이 체험하고 확증하면서 의지하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평생의 삶에 개입하시고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11장 6절에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사람은 그분이 계시는 것과 또 그분을 진정으로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신다는 것을 반드시 믿어야 합니다.”라고 선포합니다. 매일 아침 그리고 매 주일 또 우리 평생의 삶에서 이 언약의 말씀은 유효하며 살아 역사합니다.

 


코로나 우울증(Corona Blue)

 

  코로나 블루는 '코로나 19'와 '우울(blue)'이 합쳐진 신조어로, 코로나 19 확산으로 일상에 큰 변화가 닥치면서 생긴 우울감이나 무기력증을 말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특징인 전파와 감염의 무서움과 광범위함 때문 우리는 서로에게 이방인이 되어 가고 낯선 사람처럼 대합니다. 관계와 사귐은 단절되고 집콕과 인터넷이 그 자리를 대신하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힘들고 지친 현대인들에게 코로나는 더욱 깊은 우울과 단절, 소외감을 주며 마음과 정신에 여러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리스도인조차도 코로나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지구촌 전체의 전염병 상황(펜데믹)에서 더욱 우리의 마음과 감정을 지켜야 하는 이유입니다. 만나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며, 주일에 갖는 성도의 교제도 사라지고, 공동체를 의지하여 지탱해 왔던 신앙은 무너졌습니다. 신앙이 무너지면 우리 삶의 모든 기초가 무너집니다. 지금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는 코로나 시대에 어떻게 우리의 믿음을 견고한 반석 위에 세우며, 성도의 교제를 유지하고, 교회 공동체가 든든히 설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생사를 걸어야 합니다.

 

  그것은 우선 골방에서 하나님과 기도하며 말씀으로 갖는 개인예배의 시간(경건의 시간)을 든든히 세우며 풍성하게 회복하는 것입니다. 첫 걸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기초부터 반석 위에 굳게 세워야 합니다. 또한 가정 공동체를 또한 작은 교회로 세워야 합니다. 부부와 자녀가 하나님 앞에 바르게 믿음으로 서며, 삶의 예배를 드려 주님이 임재하시고 다스리시는 가정보다 중요한 교회와 천국의 원형은 없습니다. 교회가 가정이며, 가정이 교회로 교회와 가정은 둘 다 이 땅에 하나님이 세우신 천국의 유일한 모형입니다. 출발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가정들이 모여서 교회 안의 작은 교회(목장, 셀, 가정교회)를 이루어 초대교회처럼 천국 공동체를 경험해야 비로소 복음은 불신자들에게 보여집니다. 우리시대에 입과 말로만 하는 전도는 더 이상 어떤 설득력도 갖지 못합니다. 한국교회 전도의 문은 우리가 닫아버렸습니다. 복음의 권위와 교회의 영광도 다 우리가 변질시키고 끝없이 추락시켰습니다. 그래서 코로나는 오히려 하나님이 우리를 소생시키시고 부흥을 주실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음을 믿습니다.

 


예수 생명, 살아 있는가?

 

  늘 확인하며 붙잡는 질문이 있습니다. 내 안에 지금 예수 생명이 살아 있는가? 생명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약동하며 성장합니다. 더욱 예수 생명은 우리의 생각과 상상을 초월하는 능력과 역사가 있습니다. 예수 생명을 경험하지 못하면 구원 받았다는 말만으론 절대 주님이 약속하신 삶을 누릴 수 없습니다. 요 10:10 “도둑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파괴하려는 목적으로 오지만 나는 양들에게 생명을 주고 그 생명을 더 풍성하게 해주기 위해 온 것이다.”

 

  예수 생명을 떠나서 세상사는 것조차도 결코 쉽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한 두 번은 정말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죠. 그만큼 삶이 너무 고달프고 외롭고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명은 죽음으로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과 삶 그 자체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생(삶)의 의지를 가지면 희망은 절대 죽지 않습니다. 살려고 하는 의지가 그래서 중요합니다. 문제가 다 해결되고 살 만 해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 자체의 존엄과 삶에 담긴 희망 한 조각 때문 죽음을 거부해야 합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도 살아야 하지만, 나를 바라보고 응원하며 믿어주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살아야 합니다. 내가 희망의 증거가 되길 소망하는 삶의 동료들이 내 주변에 있습니다. 때론 내가 이룩한 성공보다 더 소중한 실패가 있고요. 꼭 성공과 성취만이 중요하거나 가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고난과 실패, 역경과 환란은 내가 인생의 주인이 아님을 절절히 깨닫게 하는 학교가 됩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하나님만이 내 희망이시다,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계신다!” 이런 체험을 합니다. 물론 그 모든 연단의 과정이 끝난 다음에 그렇습니다. 다만 광야학교를 다 졸업하지 않았어도 믿음은 보이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임을 알기에, 결과가 아직 오지 않았어도 오늘의 과정을 받아들이며 견디어 갑니다. 어떤 경우에는 죽음보다 훨씬 더 힘든 삶의 투쟁을 피하지 말고 계속해야 할 이유죠.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하고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내 안에 예수 생명이 약동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선교

 

  코로나 바이러스와 체류 비자의 만료로 한국에 와 있지만 선교와 선교지 그리고 현지 성도들을 생각할 때 마음에 큰 짐과 고통이 있습니다. 사명의 자리를 떠난 현 상황이 마치 삶의 뿌리가 흔들리는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더욱 코로나 이후 미래 선교의 방향과 방법 등을 생각하면 예측 불가능한 상황의 벽에 갇힌 느낌을 갖습니다. 분명 길은 있을 것이고 하나님은 절대 선교의 문을 닫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내게는 현재 길이 보이지 않는 답답함과 목양의 현장을 떠난 선교사의 아픔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이야말로 또 다시 살아계신 내 아버지 하나님을 심장으로 붙들려고 합니다. 내 신앙의 기초와 반석으로 돌아가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의 임재 속에 깊이 들어가야 할 시간입니다. 얼마 동안 낙도에 머물며 그런 시간을 갖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엘리야가 로뎀나무 밑에서 침체와 절망, 피곤과 회의에 빠졌을 때 하나님이 만지시고 먹이시며 회복시키신 다음 세미한 음성으로 그의 사명과 정체성을 회복시키신 그 경험이 제게도 간절히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의 삶에 온갖 고난과 환란, 아픔과 질병, 경제적 궁핍이 찾아올 때가 바로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의 인생과 경제, 사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스리십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때 하나님께 심장을 드리며 믿음의 고백으로 승리하길 간곡히 바랍니다.

 

찬양곡 ‘주는 완전합니다.’

 

https://youtu.be/jC5U8svMqOI

주여 우린 연약합니다.

우린 오늘을 힘겨워합니다

주 뜻 이루며 살기엔 부족합니다.

우린 우린 연약합니다.

 

주여 우린 넘어집니다.

오늘 하루 또 실수합니다.

주의 긍휼을 구하는 죄인입니다.

우린 주만 바라봅니다.

 

한없는 주님의 은혜

온 세상 위에 넘칩니다.

가릴 수 없는 주 영광

온 땅위에 충만합니다.

주님만이 길이오니

우린 그길 따라갑니다.

그날에 우릴 이루실

주는 완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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