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늘 새벽은 빛의 전령사로 찾아온다!
  • 당신의 삶, 생명의 증거
  •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절규
기독교/세계관

새가 두날개로 난다면 기독교인의 두 날개는

by Visionary 2007. 12. 14.


리영희씨는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라는 책을 통해 한국사회의 좌우익 또는 진보와 보수의 두 양극의 필요성과 조화, 통합 가능성에 대한 내용을 말했다. 사실 이런 발상 자체가 과거 한국사회에선 꿈도 꿀 수 없는 파격적인 것이며, 금기(禁忌)의 땅에 오랫동안 묶여있었던 예민한 이슈였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과 지식 정보사회 및 인터넷 세상의 도래는 더 이상 과거의 패러다임과 구조, 전통에의 맹목적인 추종을 완전히 거부하고 있다. 이것은 특히 신세대들에게 있어서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로 수용되고 있다.

이에 대한 실증이 바로 탄핵사건과 그에 대한 국민여론 및 헌재의 판결이다. 이 현상은 대통령의 탄핵 현안이 아닌 우리사회의 상상할 수 없는 전통 해체와 탈권위 현상 및 새 패러다임의 실체를 보여주었다. 의문사위원회의 혁명적이며 충격적인 미전향 장기 사상수의 민주화 인정 결정도 이런 맥락의 연장선상에 있다.

문제는 이런 과도기의 혼란 현상이 내부에서 정리되거나, 일치된 규범으로 새롭게 형성되지 못하는 시점의 온갖 갈등과 대립 양상들이다. 지금 우리는 바로 그 소용돌이의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그래서인지 피할 수 없는 역사발전의 과정이지만 국론의 분열과 민심의 혼란, 계층과 세대 간의 대립은 심각한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 대해 우리가 기독교인으로서 가져야 할 관심과 방향, 가치 판단의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사상 문제만큼 예민하며, 주관적인 것도 없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신만의 독특한 가치관이 있고, 이에서 비롯된 아젠다(Agenda)가 있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성경의 권위보다 우월한 권위나 가치체계를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것의 뼈대를 통상 기독교 세계관이라 일컫는다. 물론 기독교 세계관 안에서도 각자의 성경관이나 신학 입장에 따라 편차가 존재한다.

어쨌든 개인 따라 구태여 구분한다면 소위 좌익이나 우익 성향, 아니면 진보와 보수 성향, 친미와 반미가 나름대로 다 있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기독교 세계관의 절대 권위로 세상과 개인의 가치를 분별하고 교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결코 아니다. 실제 구원을 받아 신분과 소속은 하나님 나라에 속할지 몰라도, 그의 실제 삶과 기독교 문화로 볼 때에 그 사람은 여전히 불신자와 똑같은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결국 우리가 그토록 통탄하는 성속(聖俗)의 분리라는 이원론적 삶과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에 대한 무지 또는 무관심으로 나타난다. 복음과 하나님 나라의 통전성 및 총체성이 결여된 반쪽 복음의 병폐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 한국교회와 기독교인의 도덕과 윤리 문제 및 문화 부재는 전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이것은 복음전도의 문을 철저하게 가로막고, 하나님 나라의 무기력과 실종을 가져왔다.

기독교 세계관으로 보면 우리는 상황에 따라 친미와 보수 때론 반미와 진보의 양쪽에 다 설 수 있다. 즉 이 말은 세속의 가치관과 규범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상대적이고 가변적인 것이라는 뜻이다. 세속의 가치와 규범이 성경에 부합될 때도 있고, 불일치될 때도 있다. 또 어떤 것은 성경의 권위에 영원히 일치되지 않는 것도 있다. 문제는 우리가 갖고 있는 개인의 가치와 전통, 사회 규범에 절대성을 부여하거나, 신성불가침의 것인 양 생각하는 시각이다. 이것은 결국 사회의 모든 현상과 사건에 대한 기독교 세계관에 기초한 판단과 분별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러나 하나님만이 절대 선(善)이시고 영원한 진리(眞理)이시다. 따라서 교회에서 특히 지도자들이 사회 이슈에 대해 기독교 세계관의 엄정한 지지를 받지 못하는 개인의 가치와 규범, 판단을 마치 성경의 증언인 양 함부로 제시하고 말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다. 우리는 영원한 야당이나 여당, 아니면 진보와 보수도 아니다. 주님의 말씀처럼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고 세상을 향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강단에서 오로지 친미와 자본주의가 절대 가치인 것처럼 말하거나, 반미와 통일지상주의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이라고 선포하는 것은 하나님과 성경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며, 천박한 생각의 표출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 가운데 임한 하나님 나라와 교회마저도 세상의 가치와 사상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그 다름으로 인한 혼란과 갈등을 신앙 공동체 안으로 끌고 들어오는 부작용을 낳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교회가 그런 것들에 대해 일방적인 침묵이나 회피, 무시로 일관해서는 결코 안 된다. 만일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가 있다면, 정확한 기독교 세계관을 제시하며, 그 원리로서 분별되고 판단된 내용을 개인 양심의 자유에 따라 서로 자유롭게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공동체가 일치한 내용을 따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복음적인 참여도 이어져야 한다. 이것이 교회의 진정한 사회참여와 하나님 나라의 실천이라고 굳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