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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우물

기준을 낮추면 망한다!

by Visionary 2020. 4. 6.

‘내가복음’은 ‘짝퉁’복음

   혹시 내가복음이란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지? 신약 마가, 누가복음의 첫 머리 단어에서 만들어진 풍자로서 성경의 기준이 아닌 자기 멋대로 사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표현이다. 복음이라고 하지만, 즉 자신은 그리스도인이며 하나님과 성경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실제 삶의 내용은 자기 멋대로 살아가는 마치 가짜 같은 사람을 풍자한 단어다. 우스개처럼 들릴 수 있지만 이건 매우 비참하고 수치스런 표현이다. 왜냐하면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인 삶의 기본이 되는 표준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성경 몇 구절을 보자. 

1) 레 11: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2) 레 20:26 너희는 내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로 나의 소유를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 
3) 벧전 1:15-16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하셨느니라.
4) 골 1: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5) 마 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6) 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7) 약 2:14-17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8) 마 5:27-28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일언이폐지(一言以蔽之)하고 유튜브에 있는 예장 합동 교단의 ‘교회갱신협의회’란 단체의 여름 수련회(2001.08.22.)에서 옥한흠 목사가 목회자들에게 절절히 1시간 5분 동안에 고백과 탄식, 눈물로 선포한 말씀 (https://youtu.be/Elo2xUvlKNc) 을 꼭, 반드시 듣기를 바란다. 옥한흠 목사도 “표준을 낮게 잡으면 망한다.”고 외치고 있다. 
 
내가복음의 뿌리

   성경이 전혀 말하지 않는 엉터리 복음은 도대체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틀림없이 그 원인과 뿌리가 있을 것이다. 근본 원인을 살펴보자.

1.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짐
   첫 단추를 잘못 꿰면 끝까지 단추를 채워도 그 모양이나 옷매무새가 삐딱하고 우스꽝스럽게 된다. 처음과 출발이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교회를 열심히 출석했고, 나름 괜찮은 그리스도인이었다.”로 내 신앙을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처음 믿은 그날부터 지금껏 내 안에 담겨진 복음과 성경의 내용이 올바르며 그대로 살아왔는지를 정직하게 돌아봐야 한다.

2. 이원론
   한국교회의 큰 문제점 중의 하나는 이원론(Dualism)이다. 삶과 신앙, 말씀과 인격, 교회와 세상, 거룩한 것과 속된 것,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 육신과 영혼, 현세와 내세 등 모든 것을 서로 분리시키며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고 특정한 영역에서만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셨으며, 만유의 주가 되신다. 그 주권과 통치가 미치지 않는 영역이 없다. 복음은 타락한 인간을 죄로부터 구원할 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을 하나님의 창조질서로 회복시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한다. 

  한국교회와 성도들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많은 교회들이 성경공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심지어 제자훈련도 실시하고 있지만, 그 배운 것을 바울이 디모데에게 권면한 것처럼 실천하지 않는다.

딤전 4:12 나이가 젊다는 이유로 얕잡아 보이게 하지 마시오. 오히려 그들에게 모범이 되시오. 말과 생활로 모범을 보여 그들이 따르게 하고 그대의 사랑과 믿음과 순결한 사상으로 그들에게 본보기가 되시오.
딤전 6:5 이렇게 논쟁만 일삼는 자들, 그 마음이 죄로 인해 부패해져 있는 자들은 진리에 대해 아무 것도 모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복음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 자들은 멀리 하시오.
딤후 1:11 그대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주신 믿음과 사랑으로 내가 가르쳐 준 진리의 말씀을 실천하시오. 3:14 그러나 그대는 싸워서 확신하고 있는 진리를 따라 계속 생활하시오. 그대는 누구에게서 이것을 배웠는지 알고 있습니다.

  분명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복음을 실천하는 일상의 삶은 거의 외면 또는 무시당하는 현실이다. 실천하려 하지 않는다. 배우고 깨달은 하나님의 말씀을 일상의 삶에 적용하려 하지 않는다. 앎과 삶의 괴리 현상이 너무 심각하다. 입으로는 안다고, 믿는다고 고백하지만 그 고백과 일치하는 실천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결국 이원론은 복음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인간의 탐욕을 위해 멋대로 하나님의 주권과 임재를 왜곡하고 제한한 비성경적인 관점이다. 

3. 혼합주의
   이원론의 초점이 분리에 있다면 혼합주의의 초점은 글자 그대로 혼합에 있다. 이게 얼마나 모순인지. 분리와 혼합은 완전히 상반된 것인데 이 둘이 한국교회 안에 사이좋게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교회가 세상과 혼합되어 있다. 우리가 성경이 말하는 자리에서 얼마나 멀어졌는지 잘 보여준다. 혼합주의란 성경의 가치가 세속의 가치와 혼재되어 있는 상태다. 혼합주의의 이유 또는 뿌리는 세속주의, 성공주의, 물량주의이다. 혼합주의는 물량적이며 외적 성장을 욕망하던 교회가 스스로 선택한 방향이다. 이런 흐름으로 가려면 당연히 세상의 비성경적 가치와 방향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 이런 흐름은 특히 한국사회가 초압축 경제성장과 도시화, 산업화를 경험한 70년대부터 시작되어 8,90년대에 그 절정을 이루었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쇠퇴되지 않고 존재하는 타락하고 변질된 교회의 모습이다.

   바로 그때부터 교회는 순수함과 거룩함을 상실했고 영향력이 아닌 자기 야망의 성취를 위한 탐욕의 길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목회자들은 너나 가릴 것 없이 이것을 목회 성공과 교회 성장의 기준으로 삼아 그 길로 치닫게 되었다. 목회자들의 모임에서 이런 것이 교회의 기준이 되며, 성도들도 외형과 물량주의로 거대한 모습을 이룬 교회에 소속되는 것을 큰 자부심으로 여기는 풍토가 한국교회에 뿌리 내리게 되었다. 성경적인 교회나 신실하고 충성스런 목자로서의 목사는 힘이 없고 패배한 자들의 비겁한 자기변명처럼 여겨졌다. 오늘 한국교회의 추락과 세상으로부터의 조롱과 멸시는 뿌린 것을 거두는 것에 불과하다. 

섬길 자를 선택하라!

  여호수아가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최후의 권면과 설교를 하면서 도전한 말씀이 있다.

수 24:15-24
15 만일 여러분이 여호와를 섬기고 싶지 않으면, 여러분의 조상이 메소포타미아에서 섬기던 신이든 현재 여러분이 사는 땅의 아모리 사람이 섬기던 신이든 여러분이 섬길 신을 오늘 택하십시오. 나와 내 가족은 여호와를 섬기겠습니다.'
16 그러자 백성들이 대답하였다.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여호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절대로 그분께 등 돌리지 않겠습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다른 신들을 섬기다니요.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입니다.
17 주 우리 하나님이 친히 우리와 우리 조상을 이집트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우리가 보는 앞에서 그 큰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또 우리가 이리로 오는 동안에 줄곧 우리를 지켜 주셨고, 우리가 여러 민족들 사이를 뚫고 지나오는 동안에 줄곧 우리를 지켜 주셨습니다.
18 그리고 주께서는 이 모든 민족을, 이 땅에 사는 아모리 사람까지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오직 그분만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19 백성들이 이렇듯 다짐을 보이자 여호수아가 다시 백성들을 향해 말하였다. “그대들이 여호와를 분명히 섬기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이오. 또 그분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 그대로 넘어가지 않는 분이시기 때문이오. 그대들에게 허물이 보일 적엔 어지간해서는 눈감아 주시지 않을 것이오.
20 만일 여러분이 주를 저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그는 여러분에게 대항하여 돌아서서, 재앙을 내리시고, 여러분에게 좋게 대하신 뒤에라도 여러분을 멸망시키시고 말 것이오.”
21 그러자 백성들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였다.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만을 섬기겠습니다."
22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이 주님을 택하고 그분만을 섬기겠다고 한 말에 대한 증인은 바로 여러분 자신들이오." 그러자 그들은 말하였다. "우리가 증인입니다."
23 여호수아가 또 말하였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 가운데 있는 이방 신들을 내버리고, 마음을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바치시오."
24 백성들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주 우리의 하나님을 섬기며, 그분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이 시대에도 동일하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강력하게 선택을 요구하신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선지자의 광야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거짓 선지자와 삯꾼 목자가 판치는 세상에서 두 눈 부릅뜨고 하나님의 심장, 주님의 마음을 가진 목자의 소리를 들어야 산다.   

   그들의 한결 같은 소리는 바로 여호수아가 외치고 그의 모든 삶을 두고 경험한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의 문제다. 그것은 선택이다. 회색지대도, 타협도 없다. 그것은 절대 구원에 이르는 생명의 복음으로 사는 방식이 아니다. 어설픈 구원이나 스스로 만들어낸 구원으로 착각하면 천국이 결코 당신의 것이 될 수 없다. 복음은 너무 급진적이며 철저히 세상을 거스르고 오직 하나님 절대의식으로 매일의 삶을 산다. 잡다하고 변질된 가짜복음이 가득한 세상에서 이제라도 선택해야 한다. 더 이상 기준을 낮추지 말라. 기준을 낮추면 망한다, 죽는다!

   이래서 현대교회가 상실하고 외면한 교회 내부의 징계도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대상자를 소외하거나 축출하는 목적이 아닌 회개를 통해 바르게 세우며 주님이 머리되신 교회의 거룩함을 보존하려는 것이다. 징계는 철저히 시행되어야 하나, 성경의 기준과 절차를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행정 절차가 아니다. 사람을 살리려는 목적이기 때문에 공의를 위한 징계는 사랑을 품은 아픔과 병행해야 한다. 그러나 그 어떤 것보다도 교회의 영적 지도자인 목사가 그의 인격과 삶의 기준을 낮추거나, 강단에서 선포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대로 증거하지 않으면 자신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 교회와 성도들도 영적 죽음에 이르게 된다. 지도자는 최종적으로 하나님이 직접 심판하실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무서운 현상이 우리시대에 너무 광범위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일처럼 끔찍하게 가득 번져있다.

   하나님의 유일한 기준은 성경이다. 전통이나 교회의 관습, 목사의 목회관, 자신의 가치관이 아니다. 하나님의 기준을 다 실천하지 못해도 기준을 변질시키며 추락시켜 멸망의 길, 넓은 문과 편한 길로 가는 것은 거부해야 한다. 좁은 문을 통과하여 좁은 길을 가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기준을 바르게 알며 지키려 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은혜를 주시며 승리케 하시고 거룩한 삶을 이루는 열매를 허락하신다. 

   하나님의 최후 심판대 앞에서는 더 이상 선택할 수 없음을 명심하며 바로 오늘, 여기(Here and Now)에서 섬길 자를 선택하라! 나와 내 가족은 오직 여호와를 섬길 것이다. 수정로 침례교회 김기현 목사의 말이다. “한국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예수를 안 믿는 것이고, 한국 사회에서 가장 복음화가 안 된 곳은 바로 한국 교회 자신”이라며 한국 교회가 변혁의 대상이며 최악의 전도 불모지라고 평가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형제, 자매들을 하나님의 나라에서 다시 볼 수 있기를, 그리고 주님이 모든 분들을 안아주시며 하나님이 그 영광의 면류관으로 씌워주시는 것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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