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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우물

은혜, 감사의 뿌리

by Visionary 2019. 11. 17.

감사 그리고 추수 감사절

 

추수 감사절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요? 사지선다형 절기 헌금 아이들의 특별순서 맛있고 특별한 점심 의례적인 절기. 그러나 추수 감사절이 담고 있는 참 뜻은 위의 어디에서도 그 정답이 없습니다. 굳이 추수 감사절의 의미를 찾는다면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다. 그렇지만 대다수 우리가 갖고 있는 추수 감사절의 이미지는 위의 사지선다형 안에 갇혀 있습니다. 마치 사지선다형 방식의 시험이 개인의 창의성이나 주관, 개성을 가두고 강요된 일정한 틀 안에서 정답을 찾도록 강요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풍성한 감사를 각자 삶의 프리즘을 통해 추수 감사절에 형형색색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살아있는 감사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사지선다형에 갇힌 그런 추수 감사절이죠. 추수감사절은 감사입니다. 여기에서부터 우리는 추수감사절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 시작의 뿌리는 일반적인 단어가 아닌 고유명사처럼 쓰이는 바로 은혜라는 성경에 나오는 기독교만의 유일무이의 단어입니다. 구약에서도 은혜라는 개념과 단어가 있지만, 은혜는 신약에서 더 선명하고 구체적이며 완전하게 나타납니다.

 

나의 감사를 감사함

 

나의 감사 제목과 내용을 돌아보니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교지에 선교사로 나온 이후 한국 생활과 비교해서 가장 많이 늘어난 것은 바로 감사의 삶입니다. 한국에 있을 때도 물론 감사하며 살았지만 선교지에선 매일 주님, 감사합니다.”라는 고백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사실 환경이나 삶의 조건은 이곳이 한국보다 훨씬 못한 건 사실입니다. 감사가 풍성해진 제 삶을 돌아보면 첫째, 탄자니아의 광야학교 생활. 거주 리서치를 통해 선교지를 확정하려고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등반의 거점도시인 모시(Moshi)2년 동안 머물면서 그것도 처음 8개월가량은 아내 없이 혼자 살면서 고독과 새로운 환경 및 문화가 주는 압박 속에서 매우 힘들게 살았습니다.

 

그때 숨 쉬며 살고 나를 지탱해 나갈 수 있게 했던 유일한 시간은 새벽과 저녁의 기도 및 말씀 묵상의 시간이었습니다. 아무도 나를 보는 이 없고, 생애 첫 외국생활이며, 아프리카라는 낯선 환경에 마치 홀로 버려진 듯한 느낌 속에서 하나님과의 교제 시간은 그야말로 생명줄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하나님은 날마다 찾아오셔서 내가 얼마나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받았는지, 내 생애 가운데 베푸신 감사가 얼마나 많은지, 앞으로 내가 감당해야 할 선교의 사명이 얼마나 귀한지 낱낱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비록 환경이 척박하고, 무엇하나 변변치 않으며, 지금껏 누렸던 삶의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만 했지만 오히려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서 풍성한 은혜와 감사의 시간을 누렸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의 광야는 우리에게 감사를 누리며, 하나님의 임재를 더욱 생생하게 체험하는 복된 믿음의 학교입니다. 분주함과 부요함 때문 우리는 하나님을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은 말할 것도 없지만 케냐보다도 불편했던 탄자니아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또한 제 감사를 살펴보면서 깨닫는 둘째 사실은 케냐 사역지의 현지인과 그들의 삶을 보며 느끼는 감사입니다. 이것은 그들과 나를 비교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는 분명 모든 사람의 삶과 그 소유, 환경, 여건이 똑같지 않습니다. 상대적인 빈부의 차이가 있습니다. 내가 더 낫고 잘 산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역지인 키리몬 사람들의 삶과 환경을 보면 저는 어찌되었든지 외적 생활과 여건이 그들보다 훨씬 낫습니다. 이 세상에서 어렵고 힘들며 사는 내 모습이 초라하지만 나보다 훨씬 못한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늘 나보다 더 부요하고 모든 환경과 여건이 좋은 사람을 나와 비교하면 만족과 행복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즉 내게 주어진 내 삶의 모든 것들을 일단 그대로 감사하며 사는 것이 행복입니다. 분명 이 땅에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선교지에서 체험한 풍성한 감사의 세 번째 이유는 느리고 단순한 삶에서 비롯됩니다. 과거 한국의 삶이 바쁘고 일에 치인 삶이며 여유가 없는 삶이었다면 이곳의 삶은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여기에서도 한국 못지않게 바쁘며 힘들게 사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본인의 선택이며 삶의 스타일에서 비롯된 것이지 이곳의 삶이 그런 것을 강요하거나 그렇게 살지 않으면 삶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아무튼 선교지에서 한국과는 달리 훨씬 느리고 단순한 삶을 살면서 비로소 보이는 것들, 보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빠름바쁨은 우리의 삶을 질식시키는 현대문화의 부정적인 특징입니다. 그러나 속도는 결코 깊이를 이기거나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느림과 단순함은 삶의 미학에 그칠 뿐 아니라, 삶 자체의 본질을 보게 하며, 새로운 차원의 내적 성숙을 가져다줍니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저는 많은 것들 속에서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를 보며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감사를 체험합니다.

 

감사의 근원 - 은혜

 

아래는 감사라는 찬양곡의 가사입니다.
노래 지선. 작사, 작곡 - 손경민

https://youtu.be/WJCk35xzHFM

오늘 숨을 쉬는 것 감사. 나를 구원하신 것 감사. 내 뜻대로 안 돼도 주가 인도하신 것 모든 것 감사

내게 주신 모든 것 감사. 때론 가져가심도 감사. 내게 고난 주셔서 주 뜻 알게 하신 것. 모든 것 감사

주님 감사해요. 주님 감사해요. 내가 여기까지 온 것도 은혜입니다. 주님 감사해요 주님 감사해요. 나를 사랑하신 주 사랑

감사합니다. 항상 주안에 있음 감사. 참된 소망주심도 감사. 나 같은 사람도 자녀 삼아주신 것. 모든 것 감사

주님 감사해요. 주님 감사해요. 내가 여기까지 온 것도 은혜입니다. 주님 감사해요 주님 감사해요. 나를 사랑하신 주 사랑 감사합니다.

 

이런 놀라운 감사의 근원이며 뿌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입니다. ‘사랑 중의 사랑’, ‘은혜 중의 은혜가 바로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구원입니다. 십자가 구원이 우리에게 주어진 최대의 감사 제목임은 두 말할 것도 없습니다. 따라서 십자가를 계속 붙들고 기억하지 않으면 감사는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지금껏 살아온 모든 삶을 생각해볼 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록 그 속에 숱한 눈물과 아픔, 고난과 절망의 순간이 있었어도 우리는 감사합니다. 물론 그 당시 그런 삶의 순간들을 통과할 때에는 알 수 없었고, 오히려 불평하고 불만을 터뜨리며 불신앙 때문 흔들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삶의 폭풍우를 뚫고 안식의 항구에서 닻을 내리고 힘들고 길었던 삶의 여정을 돌아보니 그 또한 감사였음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단 한 번도 서운하게 대하시지 않았고, 또한 선하지 않으신 적도 없었습니다. 지금 사는 게 힘들고 절망이며 아프다면 오히려 내가 살아왔던 삶을 되돌아보며, 과거 고난과 역경, 절망의 순간을 어떻게 통과하여 이 자리에 있는지를 하나님 앞에서 되돌아 보시기 바랍니다.

 

감사는 감사해야 감사다!

 

사랑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입니다. 믿음도 그렇습니다. 감사도 똑같습니다. 감사가 단어로 정의되거나 지식으로 담겨있다면 결코 감사가 될 수 없습니다. 그토록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체험했다면 감사를 표현해야 합니다. 감사를 감사하는 것이 진정한 감사입니다. 어떻게 감사를 표현할까요? 다양하게 감사는 표현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경배, 감사의 기도, 입술의 고백, 감사의 헌금, 삶의 헌신, 사명의 감당 등 많은 방식으로 감사하며 감사를 드리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감사할수록 더욱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감사는 더욱 풍성한 감사를 가져올 것입니다. 감사의 선순환(善循環)이 계속되는 삶을 사는 복을 받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나 자신의 작은 감사의 표현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사소한 감사가 내일의 위대하고 풍성한 감사로 되돌아 올 것입니다.

 

감사하지 않는 삶

 

그러나 감사로 평생을 살아야 할 그리스도인들조차도 감사하지 않으며 사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나름 이유가 있습니다. “현재의 삶이 힘들고 어렵기 때문에, 좀 더 가지고 싶고 누리고 싶은 욕망과 비교의식 때문에 또는 과거에 이미 받은 은혜를 망각하는 불감증 때문에 그렇기도 합니다. 이런 모든 이유는 사실 자기 아들을 죽이시면서까지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앞에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이기적인 모습입니다. 우리는 감사할 뿐 아니라 심지어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모든 환경과 일들(범사)에 감사하며 살도록 요구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감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욕망에 탐닉하여 범죄 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주신 은혜도 전혀 감사하지 않습니다.

 

오늘, 넘치도록 감사하라!

 

그래서 바로 지금 여기에서 우리는 감사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것도 다양하고 힘에 넘치도록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의 흉내만 내서는 안 됩니다. 기계적인 감사란 있을 수 없습니다. 감사절이 내 인생을 바꾸는 감사의 절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는 한 사람과 가정을 놀랍게 변화시킵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는 가장 분명한 고백이며 찬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