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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길

신학의 한계와 논쟁

by Visionary 2012. 6. 11.

신학의 한계

무한하신 하나님의 존재 〉 하나님의 말씀 〉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성경) 〉 우리가 소유한 성경 사본 〉 성경 사본에 대한 일부 해석 (신학) 〉 내가 속한 교단의 신학

(위의 순서는 분명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애 그런지 냉정히 생각해 보라!)

그렇다면 과연 내가 믿는 신학의 무오류성과 우월성에 대해 얼마나, 그리고 누가 보장해 줄 수 있을까? 아니 좀 더 정직하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자. 무한하신 하나님과 제일 끝에 있는 내가 속한 교단 신학 사이의 간격은 얼마나 될까? 태평양 바닷물을 차 숟가락에 한 술 뜨고서 태평양 바닷물이 전부 담겼다고 말하는 건 설마 아니겠지. 

모든 신학은 성경의 기본적인 틀 안에서 소중하다. 즉 복음주의 신학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물론 지극히 상대적이지만 보다 나은 신학적 체계와 해석의 틀, 교리적 우수성을 가진 신학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동시에 다른 부분 예를 들면 신앙의 실천, 복음의 사회적 참여 등에 있어서는 정반대의 열등함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우리의 교리와 신학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은 기본교리 말고는 이 땅에서 불가능하다. 중요한 성경의 원칙에 있어서는 타협 없는 확고한 믿음과 일치를, 사소하며 지엽적인 다름에 있어서는 존중과 정직한 대화를, 그리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의 연합과 일치가 필요하지 않을까? 만일 우리가 신학으로 논쟁한다면 누가 판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신학은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의 섭리로 신학도 주어졌다. 그러나 신학은 신학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복음의 변증과 영혼 구원을 위해 존재한다. 우리의 사변과 밑도 끝도 없는 논리적 싸움을 위해서가 아니다. 당신의 맹목적이며 편협하고 무모할 정도의 신학 이데올로기에 대한 집착이 당신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세우지 않는다고 누가 감히 보장할 수 있겠는가?

나는 내가 배우고 믿는 개혁주의 신학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그리고 그 장점과 특징을 귀하게 여기며 감사한다. 그러나 일부 특히 개혁주의를 강하게 부르짖는 사람들의 공격성, 편협하다고도 할 수 없는 극단적인 배타성을 보면 그들만의 개혁주의가 너무 싫다. 이들은 심지어 옥한흠 목사님까지도 공격대상으로 삼는다. 이들의 주장과 글, 말을 보면 도대체 개혁주의 스펙트럼으로 통과될 수 있는 신학자, 목회자가 열 손가락도 되지 않는다. 개혁이 무슨 개가죽인가? 개혁주의 신학이 하나님인가? 한번 묻고 싶다. 사람이 만들어 낸 성경 계시에 대한 학문이 신학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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