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주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각자 자기 소견에 좋을 대로 한다면 그 교회는 어떻게 될까요?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Toynbee,A.J)가 ‘역사의 연구’(A Study of History)에서 말한 외부의 도전에 대한 응전(challenge and response)은 고사하고 내부에서부터 지리멸렬하게 무너질 것입니다. 더욱 교회는 영적 공동체입니다. 사단이 이런 절호의 기회를 결코 그대로 놔두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는 전투하기도 전에 패배하는 비참한 결과를 보일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교회 공동체 안의 죄악을 눈곱만큼도 허락하시거나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성도와 교회의 성결 및 승리는 그들이 보이는 일상의 삶을 통해서만 결정됩니다.
갈 5:13-16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교회 공동체와 그리스도인의 범죄 기준은 자신의 관점이나 가치, 세계관, 성향, 삶의 스타일에 의해서 결정되지 않습니다. 유일한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런 저런 이유와 기준으로 애매모호하게 교회의 거룩함을 손상시키며, 자신의 범죄를 합리화하는 것은 영적 멸망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차라리 “내가 악한 죄를 지었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으며, 십자가를 더럽혔다고 가슴을 치며 애통하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귀한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변명으로 포장된 가짜 의인을 원하시지 않고, 심령이 깨어져 정직한 자기 고백으로 나아오는 죄인을 찾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인은 분명 사단과 싸워 승리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사탄과의 영적 전투는 결코 녹록한 싸움이 아닙니다. 승리를 위해 우리는 사탄에게 속하는 어떤 죄의 세력도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영역에서 철저하게 죄와 싸워야 합니다. 승리를 위한 유일한 우리의 노력은 죄를 처리하며 하나님 편에 서서 그분이 대신 싸워주시기를 기도하고 믿음으로 기대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생명과 거룩함으로만 우리는 죄와 사탄을 향해 싸울 수 있습니다.
전투 이전에 이미 전투가 불가능한 영적 상태이며 패배를 자초할 수밖에 없는 개인과 교회라면 어디에서부터 출발해야 할까요? 가슴을 찢는 회개와 하나님의 긍휼 및 자비를 요청하는 영적 각성이 그 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 말고는 그 어떤 희망도, 가능성도 없습니다. 자신이나 교회의 영적 실존과 상황에 대한 분별력조차 없다면 더욱 간절하고 긴박하게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절망이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이 되고, 우리의 무능이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승리를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당신도 승리를 전하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또한 승리를 누리는 성도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성도들이 모인 교회 또한 승리하는 공동체, 승리를 전파하는 공동체, 승리를 누리는 거룩한 기쁨과 잔치가 있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이제 당신이 하나님께 응답해야 할 차례입니다. “(내가) 죽으면 죽으리이다!” 죄가 당신을 죽이기 전에 당신이 죄에 대해 십자가에서 죽으십시오.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에게 사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부디 당신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과 교회 공동체가 죽음에서 생명을 얻는 위대한 기적을 체험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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