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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제자도

당신은 어떤 종류의 기독교인인가?

by Visionary 2020. 11. 4.

제자입니까, 아니라면 누구?
유사품과 모조품 그리고 불량품

  유사품은 비슷하게 흉내를 내어 만든 제품이고, 모조품은 똑같이 모방하여 그대로 만들어 낸 것이며, 불량품은 바른 공정을 거쳤으나 제조 과정의 하자(瑕疵) 때문 잘못 만들어진 제품을 말한다. 이와 같은 이치로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그런 모습이 있다. 세 종류의 제품은 성격이 조금씩 다르긴 하나 바탕이나 모습에 있어서 제대로 된 제품이 아니며, 쓸모가 없다는 데에 공통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일컬어지는 그리스도인 중에도 유사품, 불량품, 모조품 등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처음서부터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제품과는 달리 그리스도인의 그리스도인됨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유일한 표지가 있는데 그것은 곧 구원의 복음이다. 그리고 복음에 따른 구체적인 삶의 열매이다. 그렇다면 잘못된 엉터리 기독교적 종교인(≠그리스도인) 또는 소위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의 근본 원인은 바로 이 부분에 있다. 그리고 보다 더 심각한 원인은 그런 그리스도인을 만들어 낸 목회자들에게 있다. 왜냐하면 목회자가 교인들에게 복음을 소개하고 양육한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의 뿌리를 더듬어 가면 변질된 복음과 그것을 소개하고 가르친 사이비 목회자에게 있다. 바로 이 점이 오늘 우리 시대의 조국교회가 갱신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대목이며, 역설적으로 가장 갱신이 안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바른 교회와 바른 복음, 좋은 교회와 좋은 목회자를 알며 경험한다고 다들 성경이 요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결코 저절로 살지는 않는다. 이것이 또한 미스터리이다. 복음을 잘못 배웠고, 사이비 목회자와 비성경적인 교회에서 생활한 사람들은 가짜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밖에 없다. 또 그렇게 치더라도 지나치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면 바른 복음을 귀 터지게(?) 듣고, 좋은 교회의 삶을 제공받으며, 좋은 목회자에게서 계속 양육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짜로 사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불가사의(不可思議)한 현상이다. 단순한 결론을 내린다면 그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것은 성경으로 비춰 본 정확한 단 하나의 원인이다. 그밖에 다른 원인에 대해 성경은 말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는 거듭난 그리스도인 또는 성장하는 참 예수 제자라고 해서 문제가 전혀 없다는 완전주의적 입장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거듭나고 성장하는 사람의 삶과 거듭남이 없는 사람의 종교 생활은 근본과 질이 다르다.

  그렇다면 제자와 판이하게 다른 가짜 그리스도인의 증상이 무엇인가? 큰 줄거리만 생각해 보자. 첫째, 구원의 감격과 기쁨, 즐거움이 없고 밋밋하며 아주 메마른 상태. 어떤 사람을 보면 얼굴이나 삶에서 전혀 구원의 기쁨과 즐거움이 느껴지지 않으며 나타나지 않는 사람이 있다. 한마디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에게 이것은 불가능하다. 심지어는 예배당에 와서 갖는 모임과 주일예배 시간의 찬송, 기도, 말씀 등의 순서에 있어서도 늘 그렇다. 영적으로 죽은 얼굴을 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더욱 그가 초신자나 아직 복음을 제대로 소개받지 못한 사람이 아닌 오래된 신자(?)일 때에는.

  둘째, 말씀의 권위와 능력에 대한 받아들임과 인정이 없음. 아무리 말씀을 여러 형태로 배우며 들어도 정작 자신의 심령에서 말씀을 살아 계신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상투적이며 타성적인 태도, 이성적이며 관념적인 접근, 진지하지 못하며 늘 졸거나 자면서 흘려버리는 경솔함으로 가득 차 있다. 무지하면 용감하고 잘못 알면 위험하다. 아는 것도 병이 된다. 지식은 있는데 생명의 말씀이 없다. 복음이 제대로 안 들어갔거나 아니면 말씀 앞에서 엎드려지고 꺾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셋째, 세상 속에서 거룩하게 구별된 삶과 승리를 위한 삶을 외면함. 이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기 자신의 바른 모습(正體)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의 생명이 역시 그 속에 없기 때문이다. 때론 정상적인 그리스도인도 세상에서 거룩하게 살지 못하며, 구별되지 못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지속적으로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런 자리에 계속 머무르지 않는다. 가짜 그리스도인의 이런 모습은 결국 세상과 교회의 삶이 칼로 잘라지듯 구분된 이원론적 모습을 갖는다. ‘예수 따로’ ‘나 따로’, ‘세상 따로’ ‘교회 따로’. 신앙과 생활, 말씀과 인격의 불일치가 늘 똑같은 간격으로 평행선을 그으며 존재한다. 그러니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기적처럼 똑같은 불변의 삶을 사는 것이다.

* 1997. 5. 11 목회했던 교회 주보에 실었던 20년 전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