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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제자도

하나님의 신비 그리고 한 사람

by Visionary 2020. 10. 18.

(돌아온 탕자, 렘브란트)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기독교인에게 더욱 그렇습니다.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영원부터 가지고 계신 계획과 목적, 뜻이 섭리를 따라 함께 오기 때문입니다. 요즘 계속 사도행전의 말씀을 묵상하고 있는데 특히 사울의 회심과 구원 및 그 이후의 변화된 삶을 보면서 놀람을 넘어서 소름 끼치고 경악하며 하나님의 신비를 깨닫고 깊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 묵상 본문은 사도행전 9장 23-31절입니다. 사울이 회심한 후 3년 가량의 시간이 지난 후 유대인들이 그를 살해하려는 모의를 꾸밉니다. 예수님을 만나 거듭난 후에 능력 있게 복음을 전파했는데 도저히 그의 복음 전파를 막을 수 없고 대항할 수 없어서 위기 의식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눈의 가시로 변한 사울은 유대인들의 살해 대상으로 전락 되었습니다. 죽이던 자가 죽임을 당하는 자가 되어 살해의 위협 앞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의 칼날 앞에서도 하나님은 그의 생명을 굳게 붙드시며 피할 길을 열어 주십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과 목적이 우리의 생명과 죽음을 결정합니다.

  그런데 죽음에서 건지시는 방편이 좀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모습입니다. 동료 그리스도인들이 커다란 광주리에 숨겨서 성벽에 줄을 매달아 심야에 탈출시키는 것입니다. 훗날 바울 사도가 된 그는 고린도서에서 이 사건을 기술하면서 자기 인생의 커다란 수치로 느껴진 감정을 담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만물의 찌꺼기와 같은 모습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진짜 놀라운 은혜입니다. 엄청난 사건과 대단한 기적으로 하나님의 역사가 늘 확증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주 소소하고 평범하며 보잘 것 없는 것들 가운데도 하나님의 신비는 숨어 있습니다. 작은 위로, 잠시 동안의 아주 짤막한 안식, 사소하고 작은 감사 제목을 통해 살아 계신 하나님의 놀라운 임재를 경험합니다. 나의 아주 평범하고 부끄러운 모습 속에도 하나님의 은혜는 담겨 있습니다.

  사울은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과거 자기의 주무대였고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화력한 위치와 명성이 있었던 장소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예수의 사람이 되어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의 제자들과 사귐을 갖길 원했습니다. 예루살렘의 제자들은 사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어서 그를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충분히 그럴 만하고도 남습니다. 오히려 그를 두려워 했습니다. 사울은 밖에서는 죽음의 위협을, 안에서는 거절 당함에 놓여 있었습니다. 바로 이때 사울을 위해 하나님이 준비하신 바나바가 등장합니다. 사울보다 훨씬 덜 위대하고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던 70인 제자 공동체의 한 사람인 그가 사울을 변호하고 옹호합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의 배후에는 이렇듯 늘 평범한 하나님의 평민들이 사용되었습니다. 다들 위대한 사역자와 큰 성공을 꿈꾸는 지도자 되려는 야망이 팽배한 시대에 이런 하나님의 평민들이 그립습니다.

  주역과 주인공에 가려 보이지 않는 더 위대하고 소중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겉으로 내놓으시지 않고 역사의 배후에 감추어 두시며 하나님이 그를 기억하십니다. 하나님이 내 이름을 아시고, 내 인생을 기억하신다면 그보다 더 소중하고 영광스럽고 감격할 일이 있을까요? 우리가 다 주인공이나 주역이 되어야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주연은 고사하고 조연 또는 단역 조차 못 되어 무대 뒤에서 잡일을 하는 것처럼 보여도 내 삶의 자리가 있으며 그 부르심에 순종하면 하나님이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하시며 기뻐하십니다. 바나나는 바로 이런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입니다.


  사울은 바나바의 변호와 동행, 도움을 힘입어 드디어 예루살렘 교회의 제자들과 교제를 하며 예루살렘에서도 담대하게 주님의 이름을 전파하며 그 동안 훈련되었던 지성과 변론, 성경 지식을 활용하여 막힘 없는 변론으로 유대인을 압도합니다. 그러나 사울의 이런 변화의 핵심과 근원은 바로 '예수 사건'입니다. 예수 만난 증거가 사울의 삶에서 생생하게 열매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외부의 방해와 박해가 있어도 생명의 열매는 자라나기를 절대 멈추지 않습니다. 예수 생명의 능력 때문에 그렇습니다. 심지어 살해의 위협 앞에서도 생명의 역사는 중단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내가 거듭나고 구원 받은 정상적인 기독교인임을 확증하는 중요한 증거는 "내 안에 예수 생명이 있으며, 그 생명의 약동을 체험하며 사느냐?"하는 것입니다.

(케냐 나쿠루에서 폰으로 찍었던 일출, 숨이 멎는 듯한 아름다움. 그러나 우리에게 그 이상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나를 끊을 수 있는 것은 온 우주에 그 어떤 것도 없습니다.(롬 8장) 31절에서 사울 한 사람의 회심과 구원은 엄청난 열매와 영향력으로 온 세상을 향해 뻗어 나갑니다. 하나님은 <예수 박해자, 제자를 살해했던 자>의 삶을 통해 수많은 영혼을 살리는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시고, 복음을 전파하여 교회를 세우시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셨습니다. 사울의 복음이 나의 복음이며, 그가 만났던 주 예수 그리스도가 또한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사울에게나 제게나 복음과 예수는 비밀이며 은혜입니다. 어찌 이 사실 앞에서 감격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도 제게 주어진 사도행전 29장의 기록을 쓰기 위해 제 삶이 하나님께 붙들려지고 그분의 말씀에 절대복종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