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늘 새벽은 빛의 전령사로 찾아온다!
  • 당신의 삶, 생명의 증거
  •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절규
진리의 길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사람들과 세상 속의 교회

by Visionary 2007. 12. 17.


  정말 알 수 없고 예측이 불가능하다. 이 시대 즉 포스트모더니즘에 살고 있는 사람들, 특히 그 주역인 신세대들을. 꼭 신세대만이 아니라 어쩌면 원하지 않아도 나이든 기성세대조차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이미 이 조류에 휩싸여 흘러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린 알아야만 한다. 이 시대의 사람들이 바로 우리의 전도와 구원의 대상이기 때문에. 그리고 교회는 오늘 이 시대 속에서 아니 이 세상 속에서 그들과 더불어 살고 있는 존재이기에 더욱 그렇다.

  만일 교회가 이 세상과 완전히 분리된 존재라면 세상이 어떻게 되고, 어느 방향으로 간들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으랴. 그러나 세상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바로 그 현장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려면 반드시 이 세상과 세상 사람들이 가는 방향을 뚜렷하게 알아야만 한다. 몇 가지 추세를 중심으로 드러난 현상 속에 숨겨져 있는 깊은 의미를 통찰력 있게 살피며, 복음과 문화를 위한 접촉점을 얻어, 교회가 이 변화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정확한 감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하자. 물론 그럼에도 어느 사회학자의 말처럼 "미래사회의 예측과 전망에서 가장 분명한 것은 그 모든 것이 너무 불분명하고 모호하다는 것이다."라는 점이다.





















1. 인터넷 덧글(리플)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각종 사건이나 이슈, 보도, 작성된 글에 대해 누구나 자유롭게 덧글을 달 수 있다. 이것은 과거엔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다. 상호 소통이 가능한 인터넷의 쌍방향성이 있기 전에는 분명 그랬다. 지금 인터넷은 비대면적인 방식으로 즉각적인 반응을 누구나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가상공간이다. 그리고 이 특징은 글을 쓴 사람과 그에 반응하는 일대일의 관계 말고는 다른 권위나 통제 따위의 특별한 관계를 무시한다.

  익명성과 기동성 및 쌍방향성은 덧글을 보면 도대체 예측이 완전히 불가능한 온갖 다양한 형태로 그 내용과 성격이 나타난다. 한 마디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런 유형이다. 기발함, 과격, 독단, 비난, 장난, 유치, 따뜻함, 격려, 대안 등이 그 짧은 몇 줄의 문장 속에 다 담겨 있다. 그런 것들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그들은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으며, 자신의 생각과 감정 말고는 그 어떤 것에도 구속당하지 않는다. 심지어 도덕적인 문제와 법적 문제를 야기한다 해도 그렇다.

  만일 교회가 이 세대에게 단 하나의 생각과 토론, 감정과 상호소통을 강요한다면 무슨 일이 생길까? 이런 다양성과 쌍방향성, 기동성, 익명성이 목회 현장과 교회에서 어떤 형태로 나타날 수 있을까? 권위와 질서는 이런 흐름 속에서 어떤 기능과 방향을 가질 수 있을까?

2. 싸이질

  싸이질은 최신 조어(造語)로서 일종의 미니 홈페이지 공간인 싸이월드라는 곳에 가입하여 자신의 홈페이지를 꾸미는 일을 뜻한다. 벌써 눈치 챘겠지만 '질'이라고 할 때에 긍정적인 기능보다 부정적인 기능, 아니면 단순한 취미 활동이 아닌 중독 수준의 활동을 묘사하는 단어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왜 이렇게 자신을 알리고 드러내는 미니 홈페이지에 열광하며, 심지어 회사에서 적어도 이를 위해 하루 업무 시간 중에 2~3시간을 투자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을까? 그것도 모자라 싸이월드 폐인까지 등장했다.

  이것은 미니 홈페이지(홈피로 약칭함)의 특징인 아기자기함과 개성, 발랄함, 자기 홍보, 비대면 방식의 만남 등이 그 다양한 원인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뿌리는 어떤 규범이나 기준 또는 사람보다도 자기 자신이 지구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현대인들의 성향이 숨어 있다. 자기를 알리고, 자신을 꾸미며, 이를 매체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자기를 확인하려는 현대인의 특징이다. 즉 그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의 내면세계에 대한 진지한 대면이나 홀로 있음에 대해 익숙하지 않음을 거꾸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첨단 지식정보 사회와 IT 세상이 만들어내는 과학 유토피아 세상의 또 다른 아담과 하와일지 모른다. 그들은 하나님보다는 자신의 존재와 영광, 명예를 추구하며, 철저히 자아 집중의 삶에 탐닉하고 있다. 사실 그것은 소외와 차단과 단절의 성(城)으로 들어가는 길인 줄도 모르고. 어떻게 이들의 내면세계에 침투해 들어가며, 이들의 영혼과 교류할 수 있을까? 자신의 영혼을 보게 하고 삶의 근원적인 문제와 그에 대한 질문에 눈뜨게 할 수 있을까?

3. 멀티미디어 세대

  이들은 모든 면에서 멀티 기능을 갖고 있다. 과거 기성세대들은 한 순간에 한 종류의 일 그 이상을 하거나 집중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렇게 살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요즘 세대는 어떤가?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손엔 잡지를 들고 그 내용을 읽고, 또 한 손엔 먹을 것을 들고 있다. 피씨를 켜면 자연스럽게 멀티 테스킹으로 모니터 화면에 적어도 4~5개의 창을 띄운다. 그래도 그들은 혼란을 느끼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들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복잡함에의 적응성을 갖고 있다.

  우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함이 그들에겐 도리어 삶의 자극과 즐거움의 원천이 되며, 에너지 분출의 장이 되고 있다. 만일 따분함과 지루함, 그리고 오직 단 하나의 진지한 주제로 가득 찬 구세대의 문화와 그 방식을 담아서 이들에게 계속 일방적으로 수용을 요구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분명 그들은 거부하고 도망갈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의 예배 형식 특히 찬양과 설교는 이런 변화에 초연하며 계속 구시대의 패러다임에 집착해야 할까?

4. 감성(EQ) 충전 세대

  고전(古典)은 이제 이 세대에게 진짜 고전(古傳)이 되어버렸다. 그들은 고전이 갖는 엄숙함과 진지함에 몰두하지 않는다. 과거 시대의 고전은 상당 부분 이성이 그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감성이 이성과 의지를 지휘한다. 2002년 월드컵을 기억하는가? 그것이 보여주는 가장 극명(克明)한 메시지가 있다면 "감성을 위해서라면 우리는 무엇이든 한다. 감성이 움직이면 우리는 감동을 받으며, 감성의 충전을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다."는 신세대와 이 시대 문화의 코드였다.

  스피드 세상에서 그리고 변화의 혁명이 매일 아니 매초마다 일어나는 세상에서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이성에의 관심이나 몰입은 비현실적이다. 더 이상 이성은 가치와 흥미의 대상이 아니다. 감성은 그야말로 인스턴트 세상에서 가장 손쉽게 반응하고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신세대와 요즘 세상 사람이 단세포는 분명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감성을 도구로, 감성을 매개체로 삼아 그들의 이성을 자극하고 진리에 접촉되도록 해야 하는 피할 수 없는 현실과 상황에 놓여 있다. 그것들을 부정적으로 보고 배격할 것이 아니라, 창조적인 접근과 긍정적인 수용으로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

   바야흐로 이 시대의 사람들 특히 신세대는 과거의 어떤 규범이나 전통, 권위에도 속박 당하는 것을 거부하며, 새로운 문화와 가치, 생활 방식을 만들어 가고 있다. 물론 전도서의 말씀처럼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으며, 가고 오는 것은 현재의 지구가 존재하는 한 역시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함이 또한 인생의 근본이며 지혜의 뿌리임도 영원한 진리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요즘 사람들이 갖는 가치와 생각, 삶의 변화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교회는 여기에 대해 어떤 준비와 대처를 해야 할 것인가? 지금 이 질문을 한다면 이미 늦었다.

  왜냐하면 우린 변화의 조류에 무작정 몸을 맡겨 흔들리지 않되, 변화의 핵심을 통찰하며 영원한 하나님의 진리가 통용되는 세상을 위해 항상 그 중심에 견고하게 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변화를 마치 파도를 타듯 우리가 또 다른 변화를 일으키는 기회로 삼아야만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우린 항상 세상보다 앞서서 가야 하기 때문이다.

  변화를 거부하며, 변화되지 않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죽을 것이고, 죽은 것들은 아무런 생명의 역사도 일으키지 못하며, 영향력도 나타낼 수 없다. 그래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사람들과 그 세상 속에서 사는 교회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 그 변화와 도전을 반드시 앞서 가며 지속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이것이 교회와 목회,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이 시대의 메시지이다.

'진리의 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독교초교파신문은 신천지가 만든 신문>  (1) 2008.03.13
한국 라브리 소개  (0) 2007.12.22
동성애의 이해  (0) 2007.12.21
동성애란 무엇인가?  (0) 2007.12.20
예수 - 실재인가, 허구인가?  (0) 2007.12.17